캄보디아에서 찾아낸 '잃어버린 수학의 성배'
신간 '0을 찾아서'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오늘날 인류 문명을 이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위대한 발명 가운데 하나가 숫자 '0'이다.
수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인간에게 수라는 개념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은 2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고대 인도에서 십진법이 자리 잡은 것은 기원전 6세기께다.
하지만 인간이 '0'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사용하게 된 것은 그보다 한참 뒤다. 고대인들도 음수에 대해 생각했지만 이해하지는 못했다. 음수를 이해하려면 '0'이라는 개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만국 공통의 기수법인 인도 아라비아 숫자에 기반한 십진법이 지금과 같은 강력한 효율성을 갖게 된 것은 '0'이라는 개념과 숫자 덕분이다.
유럽에선 13세기 인도 아라비아 숫자가 전파되기 전까지 7개의 로마 알파벳(I=1, V=5, X=10, L=50, C=100, D=500, M=1000)으로 이뤄진 로마숫자를 사용했다. 예를 들어 '18x82= 1,476'을 로마숫자로 표시하면 XVIIIxLXXXII=MCDLXXVI'이 된다.
이런 수 체계로는 오늘날 각 분야에서 쓰이는 복잡한 수식 계산을 상상하기 어렵다.
'0'의 효용성은 PC,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를 움직이는 모든 소프트웨어가 0과 1로만 짜여진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세계적인 수학자인 아미르 D. 악젤의 신간 '0을 찾아서'(담푸스 펴냄)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인 '0'의 기원을 찾기 위한 저자의 평생에 걸친 지적 탐색과 고고학적 여행을 담고 있다.
책은 수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된 어린 시절부터 수학자로 성장한 뒤 가장 오래된 '0'의 흔적을 찾아 세계 곳곳을 누비는 저자의 성장기와 모험담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낸다.
베스트셀러 '쉽게 읽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쓴 저자답게 일반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게 쉽게 풀어낸 수학적 통찰도 엿보인다.
저자는 가장 오래된 '0'의 기원에 관한 기록이 새겨진 비석 'K-127'을 우여곡절 끝에 캄보디아의 한 창고에서 찾아낸 뒤 '수학의 성배'를 발견했다며 감격스러워한다. 'K-127'은 19세기 말 메콩 삼보르 유적지에서 처음 발견됐으나 이후 약탈당해 행방을 알 수 없었다.
'K-127'의 제작 시기는 7세기로, 직전까지 가장 오래된 '0'에 관한 기록으로 알려졌던 인도 괄리오르 사원의 9세기 기록보다 2세기나 앞선다. 이는 유럽이나 아랍에서 '0'이 발명됐다는 가설을 뒤집는 유력한 증거다.
저자는 이를 근거로 '0'의 개념이 불교의 공(空)과 같은 동양의 종교적, 철학적 기반에서 탄생했을 것이란 평소 지론을 전개한다. 김세미 옮김. 276쪽. 1만2천원.
abullapi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