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해 '명백한 경제 보복'이라고 규정짓고 정부 차원에서 반드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언급해 귀추가 주목된다.
홍 부총리는 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본은) 신뢰가 깨졌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강제징용에 대한 사법 판단에 대해 경제에서 보복한 조치라고 명백히 판단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일본은 이날부터 한국의 주력 수출 제품인 반도체·스마트폰·디스플레이에 사용하는 자국산 소재·부품에 대한 수출 규제에 나선다.
그는 "보복 조치는 국제법에 위반되기에 철회돼야 한다"며 "만약 (수출 규제가) 시행된다면 한국 경제뿐 아니라 일본에도 공히 피해가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규제 조치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비롯한 상응한 조치를 반드시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홍 부총리는 "해결이 안 되면 당연히 WTO 판단을 구해야 하기에 내부 검토 절차가 진행 중"이라며 "실무 검토가 끝나는 대로 (제소) 시기를 결정하겠다"고 강조했다.
홍 부총리는 일본의 조치가 나오기 전에 미리 막아야 했던 것이 아니냐는 시각에는 "올해 초부터 경제보복이 있을 수 있다는 뉘앙스가 있었고 해당 내용을 꾸준히 점검해 왔다"며 "손 놓고 당한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홍 부총리의 상응조치 발언에 대해 업계는 일본 수출 규제에 맞대응 카드로 전면적인 무역보복 확전을 무릅쓰고라도 국산 제품의 일본 수출을 제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세계 시장 60%를 점유하고 있는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의 일본 수출을 제한하는 방안이다.
반도체의 일본 수출을 제한하면 삼성·LG 등 우리나라 기업으로부터 반도체를 공급받아 왔던 일본 파나소닉과 소니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들 기업과 거래하던 미국 등 전 세계 업계에도 영향을 끼친다면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위치가 난처해진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정부 차원의 대응보다 불매 운동 등 민간 차원에서의 대응이 더욱 효과가 클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 물품을 사지 말자는 주장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일본에 대한 맞보복을 요구하면서 "우선 우리 국민들 먼저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및 일본관광 불매로 대응해야 한다"는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다.
홍 부총리의 발언으로 유통가도 긴장하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기업이 유니클로다. 지난해 매출 1조3732억원을 기록하며 4년 연속 매출 1조원을 달성할 정도로 국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이 브랜드는 국내 여론의 집중 타겟이 됐다. 유니클로 관계자는 "아직까지 매출에 변화는 없으나 상황을 예의 주시 중"이라고 말했다. 스포츠용품 업체인 데상트, 미즈노를 비롯해 아사히, 기린 맥주 등도 사태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도요타, 닛산, 혼다를 비롯한 자동차업체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일본 완성차 수입액은 1조1961억원인 데 비해 대일 수출은 약 157억원에 그치면서 무려 1조1804억원에 이르는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향후 불매운동의 전개 방향에 대해서는 엇갈린 의견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경제보복이 시작 단계인 현재로서는 이 같은 불매운동이 체감되는 수준은 아니지만, 한국 경제가 입는 타격이 가시화되는 수준에 이른다면 불매운동도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정부가 현명한 외교 해법을 모색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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