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30주년 맞은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고령화 추세에 맞춰
안정적인 유지 위한 지혜 모아야
권순만 <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
올해는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게 된 지 30년이 되는 해다. 1977년에 대기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도입된 건강보험은 점차 소규모 사업장의 근로자, 농민과 도시 지역 자영업자에게까지 확대돼 1989년 전국민건강보험을 달성했다. 제도 도입 후 12년 만에 모든 국민이 건강보험의 혜택을 보게 된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다. 최근 전국민 건강보장이 국제 개발의 핵심 화두가 되면서 많은 저소득 국가가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를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국민건강보험을 빠르게 달성했지만 건강보험제도는 앞으로도 환경 변화에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모든 국민이 가입돼 있지만 의료를 이용할 때 내는 본인부담금이 여전히 높은 것이 대표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다행히 이번 정부는 선택진료비를 폐지하고 상급병실이나 고가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때 환자 본인부담을 크게 낮추는 등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핵심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보장성 강화는 재정 지출을 수반하므로, 국민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도 적정 수준으로 인상돼야 한다. 또 정부는 의료비 지출을 더욱 합리화해서 보험료 인상분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매우 빠른 인구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는데, 고령화는 의료 이용과 비용을 높여 건강보험 재정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 노인들이 삶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그 자체로 그들을 행복하게 하지만 동시에 건강보험 지출을 줄이고 재정을 건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이 유기적으로 연계돼 의료 서비스와 요양 서비스, 나아가 지역사회 복지 서비스의 효율을 높인다면 노인들의 삶의 질과 건강이 향상되고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의 비용을 절감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많은 장점을 갖고 있지만, 제도의 모든 측면이 저개발국가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건강보험은 각 나라의 경제·사회적 상황과 역사·문화적 맥락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저소득국가에서 빈곤층 비중은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높고, 근로자라고 하더라도 비공식 부문의 비중이 매우 크다. 이런 나라에서 소득에 기초해 보험료를 걷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저소득국가에서는 건강보험을 도입하되 정부가 많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인도 정부는 5억여 명의 빈곤·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했는데, 가입자의 보험료를 전액 보조해준다. 많은 저소득국가에서 정부가 보험료를 내주고 건강보험기관이 의료기관의 서비스 제공을 심사하고 평가하는 형태의 혼합형 건강보험제도가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동시장에서 비공식근로자와 다양한 형태의 특수고용이 증가하고 있고, 급격한 인구 고령화에 의해 정년 후 지역건강보험 가입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따라서 공식적인 노동부문에 기초해 보험료를 부과하고 이를 건강보험의 주된 재원으로 이용하는 것은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우리나라도 건강보험 재정에서 보험료만이 아니라 국고와 조세 지원의 역할이 더 커져야 한다.
보건의료 부문에만 한정해 사용되는 재원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건강보험료 역시 소득에 비례해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세금과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건강보험료와 조세의 차이가 더욱 줄어드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가 인구 고령화와 재정 안정화 등 여러 도전을 극복하고 계속 국민의 사랑을 받기를 기대한다.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