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미 DMZ 전격회동
역사적인 판문점 회동 이모저모
트럼프, 北 판문각까지
스무 걸음 걸어가 "Very good"
[ 박재원 기자 ] 30일 오후 3시46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측 땅을 밟았다. ‘미·북 비무장지대(DMZ) 정상 회동’의 백미였다. 분단 이후 미국 정상이 월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년 4월 27일 남북한 정상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건넌 지 1년2개월 만에 미·북 정상이 같은 모습을 연출한 셈이다. 다만 곧장 남측으로 돌아왔던 당시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북측 지역의 판문각을 향해 자갈밭 끝까지 스무 걸음을 더 내디뎠다. 역사적인 순간에 흥분한 듯 “매우 좋다(Very good)”는 감탄사도 내뱉었다.
北 향해 발걸음 내디딘 트럼프
미·북 정상의 판문점 회동은 1953년 7월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6년 만이다. 양국 경호원들의 움직임에서부터 긴장감이 느껴졌다. 전쟁은 멈췄지만 종전선언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 탓이다. 이날 오전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둘 다 만남을 고대하고 있지만 사실 굉장히 행정적인, 절차적인 문제나 안전·경호 문제가 있기 때문에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판문점에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은 먼저 밖으로 나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맞이했다. 김정은도 곧장 북한 판문각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군사분계선을 두고 마주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은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악수했다.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여기서 한 발짝 넘으면 사상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은 미국 대통령”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흔쾌히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북측 판문각을 향해 걸어나간 두 사람은 판문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시 남측 지역으로 건너온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백악관으로 초청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판문점에 마주선 남·북·미
1분간의 월경을 끝내고 남측 지역으로 돌아온 미·북 정상을 문재인 대통령이 맞이했다. 양복을 입은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인민복을 입은 김정은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남·북·미 회동이 연출됐다. 3국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이들은 서로 마주본 채 한참 대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처음 당선됐을 때 한반도에 아주 큰 분쟁이 있었다”며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김 위원장, 문 대통령과 함께 노력한 결과 이제 많은 진전을 이뤘다”고 했다. 김정은은 “이런 순간을 마련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화답했다.
남·북·미 정상은 자유의집으로 이동해 만남을 이어갔다. 문 대통령이 빠진 채 진행된 미·북 정상 간 판문점 회담은 53분간 계속됐다. 남·북·미 정상은 8분간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 자유의집을 함께 빠져나와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땅으로 돌아가는 김정은을 배웅했다.
트럼프가 찾은 오울렛 초소는?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을 찾기 전 DMZ 내 오울렛 초소(OP)를 먼저 방문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오후 2시45분께 오울렛 초소에서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두 정상은 각자 헬기를 통해 DMZ로 향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보다 한발 앞서 청와대에서 헬기에 몸을 실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용산기지로 이동해 헬기에 탑승했다.
오울렛 초소는 최전방 초소로 불리는 곳이다. 유엔사령부가 경비를 맡고 있는 이 초소는 동·서해안에 걸쳐 있는 모든 초소 중에서 군사분계선과 가장 가깝다.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25m 떨어져 있어 인근 DMZ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다. 오울렛 초소는 6·25전쟁 영웅 고(故) 조지프 오울렛 일병의 이름을 땄다. 오울렛 일병은 6·25전쟁 개전 초기인 1950년 8월 31일부터 9월 3일까지 낙동강 방어선인 영산지구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전사한 인물이다. 그는 미 대통령이 의회 명의로 수여하는 ‘명예대훈장(Medal of Honor)’을 받았다.
1993년 7월 빌 클린턴 대통령, 2012년 3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 그리고 2013년 12월 조 바이든 부통령 등도 오울렛 초소를 방문했다. 2012년 3월 25일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방문할 당시 방탄유리가 설치됐다. 과거 DMZ를 찾았던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군 통수권자임을 강조하기 위해 대부분 군복을 입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빨간 넥타이에 양복을 입어 눈길을 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울렛 초소에 이어 DMZ 미군 부대인 캠프보니파스의 장병 식당에서 문 대통령과 함께 한·미 장병들을 격려했다. 두 정상은 도열한 장병들과 일일이 악수한 뒤 캠프보니파스의 벽돌에 펜으로 각각 글을 남겼다. 장병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골프점퍼를 선물하기도 했다. 캠프 관계자는 “골프점퍼에는 주한미군을 대표해 감사드린다는 글귀와 함께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다지는 ‘같이 갑시다’라는 문구가 써있다”고 소개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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