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대중 前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타계…향년 97세
美 유학출신 엘리트 女운동가
두살 연하 金 前대통령과 결혼
옥바라지·망명·가택연금 고초
47년간 'DJ 그림자 내조'
14일 발인…서울 현충원 안장
[ 김소현 기자 ]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정치적 동반자였던 이희호 여사가 10일 숙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97세.
이 여사는 지난 3월부터 병세가 악화해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 왔다. 가족과 동교동계 인사들은 4월 장남이자 의붓아들인 김홍일 전 의원이 별세했을 때도 이 여사의 병세 악화를 염려해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이낙연 국무총리,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등이 이 여사의 임종 직전 병원을 찾았다. 정치권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독자적인 여성·정치활동을 해온 이 여사의 타계 소식에 애도가 쏟아지고 있다.
엘리트 여성에서 정치인의 아내로
이 여사는 1922년 서울에서 6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유복한 가정 형편 덕에 해방 전후로 미국 유학을 다녀올 정도로 학문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는 이화여전 문과, 서울대 사범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램버스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엘리트 여성운동가였다.
촉망받는 여성운동가였던 이 여사의 삶은 1962년 김 전 대통령과의 결혼 후 격랑으로 빠져들었다. 이 여사는 부인과 사별한 김 전 대통령과 정치 이야기를 하며 교감을 키웠다. 유학과 사회생활로 해박한 지식을 쌓은 이 여사와 투철한 민주주의 신념을 지닌 김 전 대통령은 자주 만나 대화하며 서로를 향한 호감을 키웠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과 결혼하는 이유를 묻는 지인들에게 지나가는 말로 “잘생겼기 때문”이라고 하곤 했다. 그는 평전에서 “이 사람을 도우면 틀림없이 큰 꿈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들었다”며 김 전 대통령과의 결혼을 결심한 이유를 회고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노모와 전처 소생의 아들 둘을 둔 무일푼의 정치인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정권의 탄압으로 감옥과 연금 생활, 타국 망명 생활 등 고통스러운 시절을 보낼 때 이 여사는 그를 지극히 보필하며 일생을 보냈다.
DJ의 가장 가까운 비판자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투쟁 동지이자 가장 가까운 비판자 그리고 조언자 역할을 홀로 해냈다. 김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과 납치 사건, 내란음모 사건과 수감, 가택연금 등 군사정권 내내 이어진 감시와 탄압을 버텨냈다. 1980년 내란음모 사건 때는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적극적인 구명 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1997년 김 전 대통령이 네 번의 도전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70대의 고령에도 ‘퍼스트레이디’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정책에 자신의 전공 분야를 살려 여성 관련 대책이 들어가게끔 도왔고 이는 국민의 정부 출범 후 여성부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김대중 정부 당시 여성의 공직 진출 확대를 비롯해 여성계 인사들이 정계 진출의 문호를 넓히는 데도 이 여사의 역할이 숨어 있었다. 한명숙 전 총리와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미경 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등이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에는 김 전 대통령과 함께 영부인으로는 최초로 평양을 방문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 별세 이후에도 동교동계와 재야 정치인들의 거목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타계 직전까지도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을 맡아 대북 관계 형성에 힘써왔다. 발인은 14일 오전 6시 신촌세브란스병원. 장지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이다.
김소현 기자 alpha@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