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책
[ 송태형 기자 ] ‘삼불후(三不朽).’ 중국 춘추시대 좌구명이 쓴 《좌씨전(左氏傳)》의 한 대목에서 유래한 성어다. 이 세상에서 덕(德)과 공(功), 말(言)을 세우는(立) 일은 영원히 썩지 않는다는 의미다.
둥핑 중국 저장대 철학과 교수는 이렇게 풀이한다. 입덕(立德)은 숭고한 도덕적 품행으로 후세의 귀감이 되는 것, 입공(立功)은 위대한 공적을 세워 길이길이 칭송받는 것, 입언(立言)은 독창적 사상을 수립해 후세인이 두고두고 배우는 것이다. 역사상 이 세 가지를 모두 겸비한 위인을 찾기란 쉽지 않다. 둥핑은 중국사에서 ‘진정한 삼불후’를 구현한 인물로 한 사람을 지목한다. 바로 양명학을 주창한 명(明) 중기 사상가 왕양명이다.
《칼과 책》은 둥핑이 쓴 왕양명 평전이다. 왕양명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일생을 따라가며 그가 입덕과 입공, 입언하는 과정을 한 편의 소설처럼 재미있게 풀어낸다. 원제는 ‘전기왕양명(傳奇王陽明)’인데 한국어판 제목은 ‘칼과 책’이다. ‘전쟁의 신 왕양명의 기이한 생애’란 부제가 책의 성격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낸다.
사상가로 알려진 왕양명은 탁월한 군사 전략가이자 백성의 삶을 돌보는 행정가이기도 했다. 저자는 강남 도적 떼를 토벌하고 영왕 반란을 제압하는 왕양명의 전략·전술을 소개한다. 치열한 정보전으로 적을 고립시키고 봉쇄하는 전략, 수괴는 처결하되 살상은 최소화해 민생 안정화를 꾀하는 모습을 상세하게 그려낸다. 저자는 왕양명의 삶을 ‘기이와 특출’로 요약한다. 그의 인생행로가 엽기적이라고 할 만큼 수난의 연속이었고, 그런 고달픈 역정을 정신적 동력으로 삼아 삼불후를 이뤄낸 특별한 존재로 우뚝 섰기 때문이다.
저자는 왕양명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그의 대표적인 사상으로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친 지행합일(知行合一)과 심즉리(心卽理), 치양지(致良知)의 개념도 쉽게 풀어준다. 평전의 미덕인 감동과 자기 성찰을 이끌어내는 책이다. 다만 왕양명을 시종일관 우러르는 저자의 시각과 서술이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 (이준식 옮김, 글항아리, 332쪽, 1만6000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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