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지 기자의 Global insight
옥시덴탈·쉐브론 근소한 차 1,2위
인수 대상 아나다코 몸값 치솟아
[ 심은지 기자 ] 미국 최대 셰일 유전 지대인 텍사스주 퍼미안 분지를 두고 ‘왕좌의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의 셰일업체 아나다코정유의 인수 쟁탈전을 보도하며 ‘퍼미안 왕좌(permian throne)’라고 표현했다. 미국의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 주인공들이 ‘철왕좌(iron throne)’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듯 미국 정유업체들이 셰일오일 산업 주도권을 차지하려고 혈안이라는 얘기다.
국제 유가가 올 들어 30% 이상 상승(브렌트유 기준)하면서 ‘셰일오일 왕좌’를 향한 욕망은 커지고 있다. 아나다코 인수전만 해도 그렇다. 셰일오일 생산량으로 보면 아나다코는 10위권 밖에 있는 업체다. 미국 2위 정유업체 쉐브론은 지난달 아나다코와 500억달러의 인수합병(M&A) 계약을 맺었다. 이에 옥시덴탈이 인수가를 550억달러로 높여 아나다코 측에 다시 매각을 제안했다. 한순간에 아나다코의 몸값이 50억달러(약 6조원)나 뛴 것이다. 아나다코 이사회는 기존 쉐브론과의 계약을 철회하고 옥시덴탈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쉐브론이 인수가를 더 높이지 않는 이상 아나다코는 옥시덴탈로 넘어간다.
옥시덴탈의 공격적인 베팅에 에너지 업계는 놀랐다. 긍정과 우려의 시선이 교차한다. 국제 유가의 변동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딜을 추진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제이슨 가멜 제프리스 애널리스트는 “이번 제안이 옥시덴탈의 연간 현금 흐름의 3배에 이른다”며 옥시덴탈의 재무 건전성을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사’로 불리는 비키 홀럽 옥시덴탈 최고경영자(CEO)의 승부수에 거는 기대도 적지 않다. 옥시덴탈은 미국 최대 정유회사 엑슨모빌, 2위 쉐브론 등에 비해 회사 규모는 작지만 셰일 분야에선 업계 1위다. 하루 셰일오일 생산량이 40만 배럴로, 쉐브론(하루 생산량 38만 배럴)을 근소한 차이로 앞서고 있다. 엑슨모빌과 글로벌 기업 쉘은 아직 셰일오일 생산량이 하루 20만 배럴에 미치지 못한다. 옥시덴탈이 하루 생산량 10만~15만 배럴의 아나다코를 차지하면 셰일오일 업계의 선두로 공고히 자리매김할 수 있다. 셰일오일의 성장세에 따라 에너지 업계의 판도가 완전히 바뀔 수도 있는 셈이다. 이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벅셔해서웨이가 옥시덴탈에 100억달러를 투자한 배경으로 꼽힌다.
그렇다면 홀럽 CEO가 셰일오일판 ‘왕좌의 게임’의 승자일까. 드라마 ‘왕좌의 게임’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 드라마는 승자를 예측하기 어렵다. 스토리를 이어가는 핵심 캐릭터가 갑자기 무참히 살해당해 시청자를 혼란에 빠뜨리기 일쑤다. 그만큼 한 치 앞을 예견할 수 없는 긴박한 분위기가 흐른다.
셰일오일 업계도 마찬가지다. 셰일오일 업계가 이번 딜을 계기로 빠르게 재편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퍼미안지대의 수많은 중소 셰일업체를 대상으로 대형 업체들의 지분 투자, M&A 등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얘기다.
설사 이 싸움에서 ‘퍼미안 왕좌’를 차지한 주인공이더라도 언제든 나락에 떨어질 수 있다. 리비아 내전, 베네수엘라 반정부 시위 등 국제 유가를 움직이는 변수는 많고 어느 것 하나 섣불리 앞일을 예상하기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사우디아라비아 왕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은 이권에 따라 내 편과 네 편을 바꿀 수 있다. 셰일오일 생산업체들의 손익분기점은 업체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일반적으로 배럴당 50달러로 잡는다. 국제 유가가 50달러 미만으로 떨어지면 셰일업체는 바로 위기를 맞는다.
홀럽 CEO는 지난달 30일 ‘밀컨 글로벌콘퍼런스 2019’에서 “셰일오일 생산량이 곧 정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면서 “에너지를 발굴하는 법, 쓰는 법 등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며 이번 딜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반면 스펜서 데일 BP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국제 유가는 향후 20년간 평균 50달러 수준이 될 것”이라며 “경제가 점점 오일에 덜 의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왕좌의 게임은 마지막 시즌을 방영 중이지만 셰일업계의 ‘왕좌의 게임’은 이제 시작인 듯하다.
summ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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