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휘 정치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
[ 박동휘 기자 ]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지난 26일 인사청문회는 대한민국 통일부 수장의 소임이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자리였다. 야당이 원하는 장관의 상(像)과 여당이 바라는 그것엔 너무나 큰 간격이 있어 보였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학자 출신 장관 후보자의 ‘흔들리는 원칙’을 집중 공격했다. 천안함 폭침을 북한의 우발적 실수라고 표현했던 그가 이제 와 “북한의 소행”이라고 정정하자, 장관이 되기 위해 소신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꿨다고 지적했다. 보수 야당의 시선에 북한 전문가인 김 후보자는 ‘반(反)김정은’ 소신이 없는 그저 친북 성향의 학자일 뿐인 것 같았다.
김 후보자를 옹호하는 더불어민주당도 극단으로 치닫긴 마찬가지였다.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이렇게 투철하게 남북 관계를 연구한 사람이 또 있을까. 통일부 장관으로 천연 다이아몬드 같다”고 극찬했다. 하지만 학자로서의 전문성이 정무적 판단을 해야 하는 장관의 소임과 맞을지에 대해선 이렇다 할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날 김 후보자는 북한 비핵화 해법에 관한 질의가 나오자 평소의 소신을 밝혔다. 미·북 간 창의적인 협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하노이 회담 과정에서 스냅백(제재를 해제하되 위반행위가 있을 시 제재 복원) 조항을 논의했다는 것 자체는 매우 주목할 만한 부분”이라고 했다. ‘미국이 스냅백을 제안했다’는 얘기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지난 15일 평양 기자회견 보도문에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부인하고, 우리 정부도 공식 인정한 바 없는 내용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북한의 관제 기자회견 내용을 사실처럼 인용하고, 그에 기초해 북핵 해법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학자적 소신이 때론 장관직을 수행하는 데 독(毒)이 될 수 있음을 김 후보자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김 후보자의 청문보고서 채택 여부는 28일 결정된다. 앞서의 장관이 그랬듯 청와대는 채택이 안 되더라도 임명을 강행할 가능성이 크다. 부디 김 후보자는 북한을 ‘적아일체(敵我一體)’가 아니라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전략으로 상대함으로써 국민을 위한 통일부 장관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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