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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의 정치화…포퓰리즘·부처간 알력에 휘둘리는 조세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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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부총리 작년 인사청문회서
"신용카드 소득공제 폐지 검토"
여론 악화 부딪히자 "없던 일로"



[ 임도원/김일규 기자 ]
“정부가 우선 딱 1년만 하면서 시간을 좀 벌자는 뜻이구먼.”(유성엽 민주평화당 의원)

“정부가 조세저항을 극복하고 국민을 설득할 자신이 있으면 1년 연장하고 다음에 안 한다고 발표하세요. 그럴 자신 없이 1년씩 연장하면서 마치 돈 나눠주듯이 이런 식으로 운용하는 것은 반대합니다.”(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

지난해 11월 3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는 신용카드 소득공제 일몰(시한 만료) 연장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정부가 과거 2~3년씩 연장하던 신용카드 소득공제 일몰을 단 1년만 연장하는 세법 개정안을 내놨기 때문이었다. 참석한 의원들은 이례적으로 짧은 일몰 연장에 대해 정부가 올해 신용카드 소득공제 폐지를 본격 논의하기 위한 포석으로 이해했다.

예상대로 ‘2기 경제팀’ 수장이 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 전부터 ‘신용카드 소득공제 폐지 검토’ 얘기를 꺼냈다. 하지만 한번 늘린 복지를 되돌리기 어렵듯이 세금도 깎아주다 다시 늘리는 건 쉽지 않다. 그렇다고 조세 원칙을 포기해선 안 되는 게 조세 당국의 임무다.

홍 부총리는 이달 4일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서도 신용카드 소득공제 문제를 언급했다. 홍 부총리 발언이 나오자마자 폐지 반대 여론이 비등했다. “또 월급쟁이만 봉이냐”는 비판이 쇄도했다. 화들짝 놀란 기재부가 1주일 뒤인 지난 11일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연장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그동안의 폐지 검토는 ‘없던 일’이 됐다.

정부가 세제 정책에 대해 잇따라 갈지(之)자 행보를 보이면서 ‘세금의 정치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장기 재정운용 방향과 조세 원칙에 따라 결정돼야 할 세제 개편이 여론과 정치권의 당리당략, 부처 간 알력에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업상속세제 강화하더니…

기재부가 추진하고 있는 증권거래세 인하와 가업상속공제 완화도 입장 번복의 사례로 꼽힌다. 기재부는 여권에서 제기돼온 증권거래세 폐지 또는 인하에 대해 지난 1월 중순까지 줄곧 부정적인 견해를 유지해왔다. 부동산거래세와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우려가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연간 6조~8조원 규모의 세수가 감소하는 현실적인 부담도 컸다. 1월 정치권 일각에서 증권거래세 폐지 기류가 나타나자 홍 부총리는 “기재부 내부에서 아직 밀도 있게 검토한 바 없다”고 잘라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나서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이 대표가 1월 15일 금융투자업계 현장 간담회에서 증권거래세 폐지 또는 인하에 대해 “이제 공론화할 시점”이라고 말하자 보름 뒤 홍 부총리는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증권거래세 인하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가업상속공제에 대한 조세 당국 원칙도 180도로 바뀌었다. 기재부는 2017년 개정 세법에 중소·중견기업 가업상속 시 공제받을 수 있는 가업영위기간을 늘리는 등 과세 강화방안을 담았다. 그러던 기재부가 올 들어 “가업상속을 받은 뒤 동일하게 유지해야 하는 업종 기준을 완화하겠다”고 선회했다. 세제를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일각에선 “가업상속을 어렵게 만들었다가 경제가 어려워지자 뒤늦게 완화하는 것 아니냐”(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지적도 있다.

기재부 내부에서도 논란 많아

지난해 말 추진된 신용카드 매출 세액공제 한도 확대도 당초 기재부 방침과 배치된다. 기재부는 줄곧 “신용카드 비과세 감면은 축소해야 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지난해 8월 청와대와 여당 요구로 마련한 자영업 대책에서 입장을 바꿨다. 연 매출 10억원 이하 가맹점에 대한 부가가치세 세액공제 한도를 기존 연 500만원에서 연 700만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내놨다. 이후 확대 방안을 시행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석 달 만에 또다시 자영업 대책을 발표하면서 한도를 연 1000만원까지 높이기로 했다. 하지만 소비자가 부담한 부가세를 기반으로 자영업자에게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것에 대해 기재부 내부에서도 논란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처 간 알력에 따라 세제 개편 방안이 바뀌기도 했다. 기재부는 1월 상속·증여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일감 몰아주기 과세’ 완화 방향을 제시했다. ‘특허를 보유한 수혜법인이 기술적 전·후방 연관 관계에 있는 특수관계법인과 불가피하게 거래한 부품·소재 매출은 일감몰아주기 과세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2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시행령에서는 이 같은 내용이 삭제됐다. “기업이 세제 혜택을 악용할 우려가 있다”는 가정을 내세운 공정거래위원회 반대에 밀렸기 때문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기재부가 전문 영역인 세제와 관련해 휘둘려서는 안 된다”며 “명확한 조세 원칙을 세우고 여당과 청와대, 국민을 설득하려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임도원/김일규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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