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양대노총 위원장 면담
親노동정책 속도조절 나선 靑, 노동계 설득 나섰지만…
민주노총 "탄력근로 기간 확대·최저임금제 개편 철회하라"
대통령이 수용하기 힘든 요구하며 '사회적 대화 무산' 압박
경영계는 "1년 넘게 호소한 사안…정부 방침 바뀔까 우려"
[ 백승현/박재원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양대 노총(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의 25일 면담은 전날 청와대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민주노총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 여부 결정을 사흘 앞두고 민주노총 지도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차원이라는 게 정부 고위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민주노총은 ‘경사노위 논의 테이블에 참여해달라’는 문 대통령 요청에 오히려 거꾸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방침 취소, 최저임금제 개편 중단 등 대통령이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를 쏟아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오전 면담을 앞두고 “오늘 만남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각오로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했다.
비공개로 잡은 면담, 공개로 전환
문 대통령과 양대 노총 위원장의 면담은 지난해 7월에 이어 6개월여 만이다. 문 대통령 취임 후 노동계와의 첫 만남이었던 2017년 10월24일 만찬과 지난해 11월22일 경사노위 출범식에는 민주노총 위원장이 불참했다. 반년 만에 성사된 면담은 당초 비공개로 하려다 회동 사실이 노출되면서 청와대가 일정을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면담 시작과 함께 사회적 대화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노동권 개선에 대한 높아진 사회적 인식만큼 우려도 있는 것이 사실이나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잘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양대 노총이) 경사노위에 참여해 정상화되면 회의에도 직접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면담은 청와대의 기대와 달리 노동계의 대정부 ‘소원수리’ 창구로 활용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노총은 면담에서 문 대통령에게 일곱 가지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김용균 씨 사망사고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요구안을 비롯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와 최저임금제 개편 반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투자개방형병원 철회, 공무원노조 해고자 복직,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철회 등이다. 민주노총은 면담에 앞서 “요구사항을 대통령에게 직설적으로 전달하고 해결 방안에 관한 답변을 듣겠다”고 했다.
경사노위에 참여 중인 한국노총도 “최저임금제 개편 등은 노동정책 후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일각에서 ILO 핵심협약과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등 경영계 요구사항을 동시에 처리하자는 주장이 있는데 말도 안 되는 것”이라며 “정부에서 그렇게 나온다면 사회적 대화는 깨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청와대 면담에 앞서 열린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개선위원회에서 경영계 요구사항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자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다. 이 위원회는 명칭에서 보듯이 노동계 요구인 ILO 협약은 물론 경영계 요구인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직장점거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등 노사관계 제도·관행 전반을 논의하기 위해 꾸려진 것이다.
“탄력근로 확대·최저임금 개편 철회하라”
노동계가 이날 문 대통령에게 요구한 사안 중 핵심은 최저임금제 개편 중단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철회다. 두 가지 모두 대통령이 제도 보완을 공언한 것으로 2월 국회에서의 입법을 목표로 관련 논의가 진행 중이다. 특히 탄력근로제 확대는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합의 사안으로 대통령이 되돌릴 수 있는 선을 넘은 이슈다. 최저임금제 개편 또한 이미 세 차례 공개토론회를 마치고 다음주 정부안 확정만 남겨놓고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대통령이 노동계를 만나 설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1년 넘게 호소해 겨우 받아들여진 두 사안에서 또다시 방향을 바꾸는 정부 방침이 나올까 경영계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대 노총 요구에 대해 문 대통령은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탄력근로제와 관련해 “노동계 우려를 알고 있다”면서도 “국민 여론과 관심이 높아지면 국회도 고민할 것”이라고 했다.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투명하고 합리적 운영을 위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면서도 “인상과 결정구조는 분리할 문제이며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구체 지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문 대통령에게 2월 중 산별대표자와의 ‘열린 토론회’를 제안하기도 했다.
경사노위에 참여 중인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이날 면담은 민주노총이 끝내 경사노위에 들어오지 않으면 남은 임기 동안 사회적 대화를 필요로 하는 산업·노동정책의 동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정권 차원의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노총이 들어온다면 지금까지의 사회적 대화 성과마저 원점으로 되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백승현/박재원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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