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클레스와 민주주의
배철현의 그리스 비극 읽기 (36) 광기(狂氣)
광기어린 인간, 잘못된 정보와 허상에 정신 빠져
사람과 사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말·글·행동으로 폭력성 나타내
아이아스의 광란, 질투·망상에 눈멀어 저지른 살육
피로 범벅된 막사 속 희생제물들 제정신으로 돌아오자 울부짖어
내게 인생은 하루다. 나는 새벽에 공부방에 놓인 조그만 방석에 앉아 눈을 감는다. 오늘 내가 해야 할 한 가지가 무엇인가 가만히 찾기 시작한다. 그것은 내게 의미가 있고 아름다움을 선사해야 한다. 나는 오늘을 내가 가고 싶은 삶의 궤적에 조준한다. 그래야 오늘이 의미가 있다. 내가 그 궤적 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온전히 몰입할 때, 그날은 비로소 아름답다. 40분가량 눈을 감고 조용히 관조한다. 138억년 전 빅뱅의 순간을 떠올리기도 하고,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순간도 기억해 낸다. 혹은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기꺼이 마시며 신념을 위해 순교한 결기도 생각한다.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오늘 당장 완수해야 할 유일한 한 가지는 무엇인가?
아침 의례
내 옆에는 내 인생의 동반자들인 ‘샤갈’과 ‘벨라’가 숨죽이고 나를 기다린다. 샤갈과 벨라는 6년 전 시골에 이사하면서 키우기 시작한 진돗개 이름이다. 이 아이들도 나와 함께 가만히 앉아 명상한다. 내가 눈을 뜨면, 더 지체하지 말고 동네 한 바퀴 뛰자고 재촉한다.
나는 이 아이들과 함께 매일 조깅한다. 나는 두 마리에 각각 리드 줄을 매고 왼손으로 부여잡는다. 우리 셋은 1.5㎞ 정도 떨어진 동네 끝 공터에 있는 커다란 나무까지 한숨에 달려간다. 우리는 숨이 넘어갈 때까지 뛴다. 우리가 열심히 조깅을 수련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나무가 우리를 무심하게 기다려 주기 때문이다. 인생에 목표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조깅이 나의 종교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오면 ‘예쁜이’가 우리를 반긴다. 나는 수년 전 시장에서 온몸이 피부병에 걸려 털이 하나도 없고 진물이 나 벌벌 떨고 있던 유기견을 집으로 데려왔다. 나는 그 유기견에게 예쁜이란 이름을 붙였다. 예쁜이와 진돗개 두 마리가 한 가족이 된 과정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노프 이야기만큼 할 말이 많다.
나는 조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이들에게 물과 사료를 준다. 나는 짚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기 시작한다. 내가 짚 빗자루를 좋아하는 이유는 거의 완벽하게 바닥을 쓸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까지 마음에 쌓아 둔 적폐들을 완벽하게 유기하는 수련 시간이다. 내가 있는 이곳이 내 삶의 터전이며, 내게 중요하고, 내게 거룩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곳을 그렇게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누가 그렇게 여긴단 말인가?
그런 후 나는 검은 봉지를 들고 이 아이들이 어제 남겨 놓은 배설물을 치운다. 나는 배설물 상태와 색깔만 봐도 아이들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 내가 오늘 배설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내게 집중하지 못할 때, 슬며시 마음속에 올라오는 나쁜 감정들이다.
직시
나는 집 안으로 들어와 청소한다. 그런 후 어제 저녁까지 글을 쓰며 책상 위에 놓았던 책들과 필기도구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나의 아침 의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항상 찬물로 샤워한다. 오늘도 정신 차리고 정진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거울을 가만히 본다. 그리고 내게 묻는다.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무심하게 바라볼 수 있는가?” 혹은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대상에 투여해 보는가?” 무엇을 응시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광기(狂氣)’란 관찰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는’ 마음의 상태다. 남들을 보기 전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미움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이 모두 미움이다. 격려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이 모두 칭찬할 대상이다. 광기란 자신의 마음속에 불이 일 듯 일어나는 격한 감정으로 세상을 보려는 어리석음이다. 광기는 입을 통해, 글을 통해, 몸을 통해 폭력으로 나오기 마련이다. 여기 광기에 사로잡혀 자신이 저지를 일을 알지 못하는 비극적인 인물이 있다. 바로 아이아스다.
테크메사
아이아스는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고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오디세우스에게 줘서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 아가멤논과 메넬레우스, 그리고 오디세우스를 살해하려 한다. 그는 광기에 사로잡혀 가축들과 목동들을 그들로 착각해 무참하게 도륙한다. 아이아스의 막사에서 나온 자는 테크메사다. 테크메사는 아이아스가 트로이 전쟁 중에 잡은 포로다. 아이아스는 오늘날 터키 중앙에 있는 프리지아 왕국을 점령해 프리지아의 왕 텔레우타스를 살해했다. 이 사건을 기록한 1세기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는 아이아스가 텔레우타스의 딸 테크메사의 미모에 반해 첩으로 들였다고 전한다.
합창대는 테크메사를 “아이아스가 전쟁에서 자신의 잠자리를 위해 힘겹게 얻은 프리지아 텔레우타스의 딸이여!”(211~212행)라고 부른다. 테크메사는 아이아스의 상태를 이렇게 묘사한다. “우리의 경이롭고 위대하고 지칠줄 모르는 영웅 아이아스가 마음을 어둡게 만드는 폭풍에 의해 쓰러졌습니다.”(207~208행) 광기는 인간의 마음을 어둡게 만들어 사람과 사물을 직시할 수 없게 한다. 그 광기는 또한 폭풍이다. 광기에 빠진 아이아스는 자기 마음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마음의 고삐를 쥐지 못하고 마치 바람에 나는 겨처럼 흔들린다.
합창대는 테크메사에게 막사 안에서 일어난 일을 묘사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녀는 말한다. “어떻게 제가 말로 담을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들은 죽음과 같이 비통한 고통을 듣게 될 것입니다. 광기가 그를 어젯밤 쓰러뜨렸습니다. 그의 막사 안에는 끔찍한 것들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피로 범벅이 된 희생제물들입니다. 그가 그것들을 도륙했다는 증거입니다.”(216~220행)
광기
‘광기’를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마니아(mania)’는 자신을 흥분시키는 망상에 사로잡힌 마음의 상태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을 둘로 나눈다. 자신에게 몰입하지 못하고 잘못된 정보와 허상에 사로잡힌 ‘무리’들과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스스로 극복하려는 ‘개인’이다. 인간은 처음부터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 천천히 인간이 된다. 인간이 개인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자기성찰’이라는 영웅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시기가 아이아스를 장님으로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행동이 악행인지 모른다. 성채와 같이 몸집이 큰 아이아스는 그의 무시무시한 칼로 가축들과 목동들을 살육했다. 테크메사는 아이아스의 살육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그는 묶여 있는 가축들을 막사 안으로 들여왔습니다. 그리고 땅바닥에 눕혀 멱을 따거나 맨손으로 찢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후 발이 빠른 숫양 두 마리를 잡아, 한 마리의 혀를 자르고 머리를 자른 후 내팽개쳤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른 한 마리를 기둥에 묶어 끝이 둘로 갈라진, 씽씽 소리를 내는 채찍으로 갈기기 시작합니다. 그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악의에 찬 말로 지껄였습니다. 악마가 그를 통해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234~244행)
244행에 ‘악마’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다이몬(daimon)’이다. 악마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디몬(demon)’이 이 단어에서 유래했다. 고대 그리스어에는 ‘신’을 의미하는 두 단어가 있다. ‘테오스’와 다이몬이다. 테오스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신이란 의미고, 다이몬은 개인을 보호하고 영향을 주는 영적인 존재다. 다이몬은 개인이 지닌 ‘천재성’ 혹은 ‘운명’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다이몬은 시기와 분노로 가득 찬 인간을 ‘악마’로, 칭찬과 기쁨으로 가득 찬 인간을 ‘천사’로 만든다. 그래서 다이몬은 문맥에 따라 ‘악마’ 혹은 ‘천사’로 번역된다.
테크메사는 아이아스의 광기 어린 행동을 보고 애타게 말한다. “그가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새로운 고통으로 괴로워할 것입니다. 인간이 누구의 개입도 없이 자신이 저지른 고통을 본다는 것은, 더 큰 고통을 주기 마련입니다!”(260~262행)
아이아스는 광기라는 병을 앓고 있는 동안 자신이 저지른 재앙을 즐겼다. 그러나 그 병에서 깨어나며 더 깊은 슬픔에 빠진다. 아이아스는 비통하게 울기 시작한다. 그는 울부짖는 황소처럼 저음으로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의 울음소리는 이렇다. “이오, 모이 모이!” 이 그리스어 단어들은 의성어다. 굳이 번역하자면 이렇다. “아아, 슬프고 슬프도다!” 아이아스는 자신의 광기가 저지른 참사를 보고 깊은 고통과 슬픔의 수렁에서 신음하기 시작한다.
배철현 < 작가·고전문헌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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