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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폐허 속에서 글로벌 기업 SK의 토대 닦은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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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년, 호국 보훈 대표기업

최종건 SK 창업 회장

불굴의 개척 리더십으로 직물수출국 이뤄
혁신적 기업가 정신 오늘날 깊은 울림



[ 유재혁 기자 ]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해다. 3·1운동으로 나라를 되찾으려는 독립운동이 본격화됐고 해방 후에는 호국과 보훈(유공자에게 보답하는 일) 활동으로 승계됐다. 모두가 국가 정체성을 회복하고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애국지사뿐 아니라 기업들도 대열에 앞장섰다. 일제 치하에서 남몰래 독립운동을 후원했고 6·25전쟁의 폐허에서 기업을 일구고 국군 장병, 국가유공자들을 지속적으로 후원했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독립·호국·보훈 후원 활동을 해온 대표 기업들을 소개한다.

SK의 창업자 담연(湛然) 최종건 회장은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살았다. 일제 치하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해방과 건국, 6·25전쟁을 모두 겪었다. 국가를 잃은 민족의 아픔을 몸소 겪으며 나라 사랑의 정신을 키웠고, 세계 최빈국의 가난을 보면서 국가 경제 발전과 기업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창업과 기업경영의 경험을 통해 사람과 기술, 신용의 중요성도 뼈저리게 느꼈다. 최 회장은 자신의 세대가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사명감으로 사업보국(事業報國)을 경영 이념으로 삼았다. 그 방식은 불굴의 도전과 개척정신이었다.

SK는 6·25전쟁 중 폭격으로 불타버린 직기 20대를 재조립해 1953년에 설립한 작은 직물회사인 ‘선경직물’에서 시작했다. 이 회사는 폐허 속에서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던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우리나라 산업 발전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최 회장은 창업 초기 야전침대에서 불편한 잠자리를 감내하면서 부서지고 흩어진 부품 중 쓸 만한 부품을 골라 직기를 직접 조립해 가동했다. 직원들과 함께 철골과 파이프를 자르고 용접했다. 마차를 사용해 돌과 자갈을 실어나르고, 강변에서는 모래를 파다 비벼 벽돌을 쌓았다.

조립한 직기들이 멈춰서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직기를 직접 수리해 사용했다. 최 회장이 혁신적인 경영자로 존경받는 이유는 목표한 것은 반드시 이뤄내고야 마는, 저돌적인 추진력으로 신산업의 씨앗을 뿌렸기 때문이다.

1955년 당시 양복 안감은 빨면 줄어드는 단점을 지녔다. 최 회장은 선경직물 기술진과 함께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열처리 과정의 문제를 해결해 빨아도 줄어들지 않는 ‘닭표안감’을 개발했다. 그해 10월에 열린 해방 10주년 기념 산업박람회에서 ‘닭표안감’은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상공부장관상을 받았다. 상품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불티나게 팔려나간 건 말할 것도 없다. ‘닭표안감’ 이후에도 혁신적인 디자인 도안을 적용한 ‘봉황새 이불감’을 출시해 10년 동안 전국 판매 1위를 휩쓰는 등 시장을 선도해 나갔다. 최 회장이 중시했던 ‘품질 제일주의’가 빛을 발한 결과였다.


선경직물이 국내 시장에서 입지를 공고히 다진 뒤 최 회장은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선진국의 높은 장벽을 넘기 위한 각고의 노력 끝에 1962년 4월 인견직물(Rayon Twill) 10만 마를 홍콩에 수출하면서 우리나라를 직물 수출국 반열에 올려놓았다. 최 회장은 창립 10주년이 되던 해인 1963년 직물업계의 발전과 수출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최 회장은 이후 섬유종합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 원사 생산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섬유종합기업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실행했고 나아가 원사 생산의 기초가 되는 석유사업으로 확장했다. ‘석유에서 섬유까지’의 원대한 비전으로 진화시켜 나간 것이다. 하지만 그 꿈을 실현하지 못한 채 창업 20주년이 되던 1973년 11월 폐암으로 향년 48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국가와 기업의 발전에 있어 인재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최 회장은 창업 초기부터 인재를 구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인재 중시 경영이념이 드러난 것이 바로 TV 방송 프로그램 ‘장학퀴즈’였다. 최 회장은 청소년들의 면학 분위기 조성과 향학열을 고취하기 위해 ‘장학퀴즈’를 적극 후원했다. 인재들이 성장해 미래를 밝게 이끌어달라는 취지였다.

절망으로 가득한 전쟁의 폐허 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불꽃을 피우고 원대한 기업가로서의 꿈을 키워나간 청년 창업가 최종건 회장의 모습은 오늘날 예비 창업자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진정한 기업가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인재와 기술, 미래를 내다보는 경영 리더십은 지금의 글로벌 기업 SK로 도약하는 굳건한 초석이 됐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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