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선 시민단체 반대로 '의료 빅데이터' 발목잡힌 사이…
한국, 개인 의료정보 거래 금지돼
AI개발때 해외데이터 갖다 써야
[ 이지현/임유 기자 ] 미국 바이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인 루나DNA는 지난 5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생체정보와 주식을 교환토록 해달라고 신청했다. 주식을 현금 대신 개인의 생체 정보 등 건강 데이터로 거래하겠다는 첫 시도다. 공유한 생체정보를 활용해 신약 개발 등으로 이익이 생기면 주주는 이 중 일부를 배당받을 수 있다. 가치가 가장 높은 것은 전장유전체검사(WGS) 데이터로, 21달러 정도다. 이 회사는 유전자 검사를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데이터를 업로드하는 DNA 시장을 구축할 계획이다.
한국에서는 이 같은 유전체 공유 시장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개인 의료정보를 거래하는 것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익명의 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조차 의료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막혀 있다. 환자 치료를 돕는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국내 환자가 아닌 해외 환자의 데이터를 활용해야 할 정도다. 국내 환자의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상업 목적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의료 빅데이터는 AI 개발, 맞춤형 의약품을 개발하는 정밀의료 등에 활용될 수 있다. 정부가 빅데이터 규제를 풀어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허용하려는 이유다.
일본은 지난 5월 차세대의료기반법을 제정해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에 나섰다. 개인이 거부하지 않으면 의료기관은 언제든 익명 의료정보를 사업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 의료정보 당사자나 유족 등이 반대하면 제공이 중단되는 방식이다. 일본 정부는 2021년께 이를 활용한 신약이나 AI 개발 등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은 갈 길이 멀다. 활용 가능한 의료 빅데이터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조차 애매하다. 업계에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세워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시민단체들은 의료 빅데이터 활용을 반대하고 있다. 의료 빅데이터 활용이 늘면 민간 보험사 등이 이를 악용해 의료시스템이 붕괴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환자 스스로 의료 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게 하는 과학기술정통통신부의 마이데이터 사업도 같은 논리로 반대하고 있다. 송승재 디지털헬스산업협회장은 “개인 의료 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라며 “환자 등이 자신의 의료정보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이지현/임유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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