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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규 칼럼] 소득 3만달러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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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2만불 돌파 뒤 '경제위기' 닥쳐
'공약 도그마'로 정책 경직성 심해
'4만불' 지향한 국가전략 세울 때

오형규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융통성이 없어 보일 정도로 자신의 말을 지키려 한다. 정권 재창출 의지도 강하다.” 야당 원로의 관찰이다. 개헌 발의 때 보여줬듯이 성사 가능성을 떠나 약속을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이런 우직함은 특유의 감성적 행보와 더불어 지지율 고공행진의 한 요인일 것이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욕이 지나쳐, 전면 수정이 필요한 경제공약에까지 집착을 보이는 점이다. 거의 대다수 경제학자들이 소득주도 성장을 ‘말 앞에 마차를 둔 격’(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이라고 비판해도 유턴은 없다는 식이다.

게다가 ‘6·13 선거’ 압승으로 공약 재검토 대신 실행 의지만 더 강해졌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재벌 개혁, 탈원전 등을 쏟아내고, 불발에 그친 개헌을 대체할 ‘입법전(戰)’까지 준비 중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한국의 최저임금과 법인세 역주행에 대해 우려섞인 권고를 내놨지만 한 귀로 흘릴 정도다.

자기확신이 강할수록 오류나 실패 인정에는 더 인색해지는 법이다. 하지만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정부 경제분야에 대한 긍정 응답은 50% 미만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경제 성적표는 성장률, 일자리, 소득처럼 철저히 숫자로 표시된다. 국민은 교육열 강한 학부모 같아서, 나쁜 성적을 오래 참지 못한다. 탁현민식 이벤트도 소용 없다.

그런 점에서 선진국 기준인 ‘소득 3만달러’ 진입은 정부의 경제실력을 가늠할 시금석이라고 할 만하다. 문 대통령은 작년 말 ‘2018년 경제성장률 3%, 국민소득 3만달러’ 달성을 자신했다. 지난해 2만9745달러였으니 따논 당상이다. 돌발 사태만 없다면 ‘약속’은 지켜질 것이다.

여기서 기억해둘 게 있다. 과거 1만달러, 2만달러를 돌파하고는 1~2년 뒤에 위기가 왔다는 사실이다. 1995년 1만달러 달성 이후 외환위기를, 2006년 2만달러 돌파 뒤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다. 두번 다 정권 후반기에 ‘과도한 원화 강세→수출 악화→경상적자 누적→경제위기’의 덫에 빠졌다. 경제 펀더멘털이 망가지는데 환율로 화장하려다가 더 망친 꼴이다.

물론 지금은 다르다. 수출이 여전히 늘고, 경상수지는 74개월 연속 흑자다. 그러나 미·중 무역전쟁, 한·미 금리역전, 주력산업 부진, 중국의 추월 등 대내외 파고가 심상치 않다. 하반기에 수출이 꺾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환율 감시 대상국이어서 원화 절하(환율 상승)로 벌충하기도 어렵다. 거시환경 변화에 더 철저하고 정밀하게 대비해야 할 때다.

그런데 정부의 실력이 영 미덥지 않다. 정권 차원의 ‘모피아’ 기피 탓에, 경제팀에는 거시·외환 전문가가 거의 없다.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이슈로 촉발된 현장 대혼란과 일자리 참사를 보면 더욱 의구심이 든다. GDP(국내총생산) 1700조원의 세계 12위 경제대국에서 소득을 늘려 성장시킨다는 실험을 하는 수준으론 곤란하다.

경제는 고정된 정물화가 아니다. 변화무쌍한 생물과도 같다. 선악으로 가를 수 없는 현실 그 자체다. 그런데도 ‘공약 중시’에 비례해 정책은 콘크리트화 하고, ‘공정, 정의’ 같은 추상명사에 갇혀 유연한 대처를 가로막고 있다.

소득 3만달러에 진입하는 만큼, 4만달러를 지향하는 국가전략과 정치·경제·사회적 신뢰자본이 절실하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4만달러 이상 10개국(인구 1000만 명 이상)이 3만달러에서 4만달러 도약까지 평균 4.9년이 소요됐다. 한국도 3% 성장을 유지한다면 2020년대 중반 4만달러가 가능하다. 그러려면 수출·내수, 제조·서비스업의 균형있는 성장, 노동 개혁과 생산성 제고 등이 필요하다.

소득 3만달러는 양면성이 있다. 임기 중 3만달러대에 안착한다면 치적(治績)이 되지만, 2만달러대로 재추락하면 독이 될 수도 있다. 경제 성적은 공약 실행보다 대내외 환경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 멀리 봐야 할 때다.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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