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黨·政·靑 회의
경총 건의 수용…6개월간 처벌 유예
고용·소득감소 악화 우려에 '임시방편'
경제장관회의서 논의…업종별 대책 '주목'
산업현장 "본질적 문제 해결 안됐다"
[ 백승현/심은지/장창민 기자 ] 근로시간 단축을 준비 없이 밀어붙이던 정부가 뒤늦게 부작용을 인정하고 한발 물러섰다. 제도는 오는 7월부터 시행하되 산업현장의 요청을 받아들여 6개월의 계도기간을 두기로 했다. 이 기간에는 제도의 현장 안착에 중점을 두고 적극적인 근로감독은 지양한다. 위반사항 적발 시에도 최장 6개월의 시정기간이 주어진다. 경제계는 한숨 돌렸지만 업종별 특성을 고려한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연장이나 인가연장근로제 확대 등 더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행 열흘 전 한발 물러선 정부
정부가 전격적으로 근로시간 단축 계도기간을 두기로 한 데는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역할’이 있었다. 경총은 지난 19일 근로시간 단축 제도와 관련해 6개월의 계도기간을 부여해줄 것을 고용노동부에 공식 건의했다. 이에 대해 이낙연 국무총리는 20일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을 위한 충정의 제안으로 받아들이며 검토할 가치가 있다”며 “계도기간 설정과 관련한 정부 입장을 공식화하는 것에 고민이 있었는데 모처럼 경총이 제안을 주셨기에 응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법 시행이 임박했는데도 버스·정보기술(IT)·건설업계 등에서 혼란이 가중되자 계도기간 설정 여부를 고민하던 정부에 경총이 ‘물꼬’를 터준 셈이다.
당·정·청 협의회 직후 주무부처인 고용부는 곧바로 후속조치를 내놨다. 고용부는 우선 근로감독 과정에서 근로시간 위반이 확인되더라도 근무형태(교대제) 개편이나 인력 충원 등의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최장 6개월의 시정기간을 부여할 계획이다. 위반 사실 적발 시 우선 3개월의 시정기간을 주고, 사업주 요청이 있으면 추가 3개월을 부여하는 식이다. 가령 오는 10월 A업체 사업주에 대해 근로시간 위반 진정이 접수되면 근로감독관의 수사를 거쳐 우선적으로 내년 1월까지 시정기회를 주고, 사업주의 연장 요청이 있으면 타당성을 판단해 내년 4월까지 처벌이 유예된다. 계도기간이 올해 말까지임을 감안하면 사업주 처벌은 최장 내년 6월까지 유예된다는 얘기다.
고용부는 경제관계장관회의 등 범부처 협의를 통해 업종별 특성을 반영한 근로시간 단축방안도 마련키로 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에 대한 고소·고발이 접수되면 근로감독관들의 수사 착수는 불가피하다”면서도 “다만 근로시간을 어길 수밖에 없는 사정과 그동안의 근로시간 준수를 위한 사업주의 노력을 감안해 처리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본질적 문제는 해결 안 돼… 우려 여전”
기업들 사이에선 ‘한숨 돌렸다’는 안도와 ‘본질적 문제가 해소된 건 아니다’는 우려가 교차했다. 6개월 계도기간 설정으로 당장 혼란은 피할 수 있지만 업종별 다양한 근로 형태 등을 감안하면 근로시간 단축 부작용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그동안 산업현장에서는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에 이어 근로시간 단축까지 겹쳐 인건비 부담이 크게 불어날 것으로 우려해왔다. 적지 않은 기업이 인건비가 싼 동남아시아 등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방안까지 검토할 정도다.
근본적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경제계의 호소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와 인가연장근로제 시행 등이 대표적이다. 경총은 앞서 정부에 탄력근로 단위기간과 인가연장근로 사유를 확대해달라고 건의했다. 2주 또는 3개월 단위의 탄력근로 기간을 1년으로 하고, 천재지변과 같은 특별한 사정으로 제한된 인가연장근로 사유를 확대해달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업종이 IT 서비스업이다. 프로젝트 단위로 사업이 진행되는 시스템통합(SI) 작업은 시스템 개설 직전에 일이 몰려 특정 기간에 집중적인 야근이 불가피할 때가 많다. 그렇다고 근로시간 기준을 지키기 위해 다른 인력을 프로젝트에 투입하면 업무 연속성에 문제가 생긴다. 건설업 중에서는 해외사업 부문의 우려가 크다. 지난 4월 현재 해외파견 국내 건설 근로자 수는 1만6543명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하려면 최소 20% 이상의 인력을 추가 고용해야 한다고 업계는 추산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계도기간 정부는 각종 부작용과 애로사항을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이를 반영해 보완책을 촘촘하게 짜야 한다”고 말했다.
백승현/심은지/장창민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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