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불 관세로 격화되는 미·중 갈등
중국을 기술 및 시장협력 기반 삼아
韓 경제 재도약 발판으로 활용해야
오승렬 < 한국외국어대 교수·중국외교통상학 >
미국이 다음달 6일부터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첨단 기술 수입품 1102개 품목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나섰다. 중국도 농산물과 자동차 등 미국으로부터의 수입품 659개 품목에 25%의 보복 관세를 물리겠다고 맞불을 놨다. 표면적 이유는 미국의 과도한 대중 무역 적자이지만, 사실은 중국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기술 굴기’에 대한 견제다. 중국 역시 세계 반도체 수요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자국 시장 보호를 위해 지난달 31일 한국 주요 반도체 기업의 가격 담합 여부에 대한 현지 조사에 착수했다.
중국의 산업기술 수준은 보는 각도에 따라 그 평가가 엇갈린다. 얼핏 보면 중국의 기술 수준은 이미 세계 선두 그룹으로 떠올랐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의 통계에 따르면, 2017년 중국 화웨이와 중싱(ZTE)이 기업 특허출원건수에서 나란히 세계 1, 2위에 올랐다. 그러나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의 실제 특허 획득 건수를 보면 화웨이는 20위에 불과하다. 또 최근 미국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 4위인 ZTE는 미국의 제재 대신 14억달러의 벌금 및 예치금과 경영진 교체, 미국의 조사팀 파견이라는 굴욕적 합의를 받아들였다. 사실상 ‘기술 굴복’이다. 핵심 부품의 30% 이상을 미국에서 수입하는 ZTE로서는 미국의 제재하에서 생산을 지속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세계의 공장’ 중국의 산업기술은 외화내빈이다. 지난 40년 동안의 개혁개방 과정에서 산업기술을 주로 외자기업에 의존했던 기술 생태계의 취약성 탓이다. 홍콩과 대만 기업을 포함한 외국인 투자 기업은 아직도 중국 정보통신기술(ICT) 제품 수출의 4분의 3을 담당한다. 중국 기업의 높은 대외 기술의존도로 인해 자국 기업 간의 기술 확산과 전파 영역 역시 취약하다. 최근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나, 선진국과의 핵심 기술 격차는 여전하다. 지식재산권 보호의 취약성이나 기업 경영의 관료주의 속성도 실효성 있는 기술개발을 어렵게 한다.
그동안 세계 제1의 수출대국이며, 광범위한 영역의 첨단 기술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 한국 경제는 일종의 ‘공중증(恐中症)’을 가지게 됐다. 우리보다 기술적 우위에 있는 미국이나 일본, 독일에는 눌리고 밑에서 치받는 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상황이 기업을 압박했다. 또 중국의 인건비 상승과 환경 정책 강화 등의 불리한 경영환경으로 인해 ‘포스트차이나’ 시대의 대체 투자 대상 지역 모색이 불가피하다는 관점도 확산됐다. 설상가상으로 ‘사드 보복’은 중국 시장의 불확실성과 기업 리스크를 증폭시켰다. 이제 미·중 무역갈등 와중에서 한국 경제가 입을 손실과 중국의 한국 기업 견제가 또 다른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그러나 지피지기(知彼知己)한다면 중국은 여전히 한국 경제 도약의 공간이다.
2017년 기준으로 한국은 중국 총 수입의 10%를 차지한 최대의 수입 상대다. 이에 비해 인구는 우리의 2.5배, 경제 규모는 3배 수준인 제조업 강국 일본은 중국 총 수입의 9.2%를 차지해 2위를 기록했다. 중국 경제가 그만큼 한국을 필요로 한다는 방증이다. 또 한국에 중국은 제3국으로의 수출을 위한 중간재 수출 대상 및 생산기지로서의 의미가 강한 데 비해, 일본은 중국을 최종 목적지로 접근하는 경향을 보인다. 미·중 무역갈등이 일본 경제에 영향을 덜 미치는 이유다.
미·중 간의 무역갈등이 격화될 때마다 몸살을 앓는 우리 경제 체질을 바꾸기 위해 한·중 경제관계의 진화가 필요하다. 중국을 재수출 생산기지나 경쟁자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기술협력과 시장통합 기반으로 인식해야 한다. 선진국에 비해 ‘가성비’에서 우월한 공정기술과 제품 수준을 갖춘 한국의 기업은 중국이 필요한 산업 현대화와 높은 대외 기술의존도 개선을 위한 최적의 협력 파트너다. 미·중 간 무역갈등은 한국 경제에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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