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장으로 영면
장지엔 구광모 상무 등
가족·형제들만 따라가
발인 참석한 이희범 前장관
"이런 간소한 장례는 처음"
"사람 함부로 자르지 말라"
인터넷 '구본무 미담' 확산
[ 좌동욱 기자 ]
‘정도 경영’으로 한국 경제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22일 본인이 생전에 아꼈던 ‘숲과 나무’ 아래 묻혔다. 발인제는 이날 오전 8시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비공개로 치러졌다. 가족과 지인 100여 명만 참석했다. “장례를 간소하게 치르라”는 고인의 유지(遺旨)를 따랐다고 회사 측은 전했다.
◆‘35분’ 검소한 발인제
사흘 연속으로 빈소를 찾은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추모사를 낭독했다. 그는 “외국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보라는 권유도 주변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기 싫다고 거절했다”고 구 회장 생전의 일화를 전하며 “자신에겐 엄격했지만 남에게는 한없이 관대했던 경영인”이라고 애도했다. 한 참석자는 “짧은 추모사였지만 코끝이 찡했다”고 했다. 유족이 고인 영정 사진에 헌화한 뒤 다함께 묵념하고 발인제를 마쳤다.
오전 8시29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층. 고인의 영정을 두 손으로 받든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가 지하 1층에서 지상으로 걸어 나왔다. 윤 대표는 구 회장의 맏사위다. 외아들인 구광모 LG전자 정보디스플레이(ID)사업부장(상무)이 뒤를 따랐다. (주)LG에서 구 회장을 직접 모신 6명의 전·현직 비서가 관을 들었다. 그 뒤를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주)LG 부회장,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 등 구 회장의 형제와 가족들이 따랐다.
장례 절차는 차분하고 조용하게 진행됐다. 구본능 회장의 눈가가 유독 붉었다. 구광모 상무도 애써 참으려 했지만 울음이 터져나올 듯한 표정이었다. 간혹 눈물을 훔치는 유족은 있었지만 통곡하는 사람은 없었다.
영정 사진 속 구 회장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관을 리무진 장의차에 실은 뒤 유족이 묵례로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면서 발인 절차가 마무리됐다. 이날 발인 행사에 걸린 시간은 총 34분. 장지까지 따라가는 사람은 구 회장의 직계가족으로 한정했다. 이날 발인에 참석한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대기업 오너 장례식에 수없이 가봤지만 이렇게 간소한 장례는 처음이었다”며 “장지까지 따라가고 싶었지만 가족들이 간곡하게 요청해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구본무 미담’ 퍼나르는 네티즌
운구차는 서울 한남동에 있는 구 회장 자택을 잠시 들른 뒤 화장장이 있는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으로 향했다. LG그룹 관계자는 “유해는 화장한 뒤 수목장으로 모셨다”고만 전했다. 수목장은 화장한 뼛가루를 나무뿌리 주위에 묻는 자연친화적인 장례 방식이다. 한국의 과도한 장례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구 회장의 뜻을 따랐다.
구 회장의 유해는 경기 곤지암의 ‘화담숲’ 인근에 묻힌 것으로 알려졌다. 숲과 새를 사랑했던 구 회장이 수년에 걸쳐 조성한 생태수목원이 화담숲이다. 서울 여의도의 절반 규모인 130만㎡에 달한다.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의 화담(和談)은 구 회장 아호다.
지난 사흘에 걸친 구 회장의 장례가 우리 사회에 미친 울림은 컸다. 구 회장이 평생 거둔 경영성과에 못지않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인터넷엔 구 회장의 생전 선행과 미담 사례가 퍼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사람을 함부로 자르면 안 된다’ ‘약속 시간보다 항상 20분 먼저 나가야 한다’ 등 구 회장의 생전 소신을 전한 언론 보도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날랐다. ‘고(故) 구본무 회장’은 이날 네이버의 ‘뉴스 토픽’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의 장례 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구 회장 유족은 국가장이나 회사장이 아니라 조촐한 ‘가족장’을 선택했다. 대기업 오너가 수목장을 치른 건 처음이다. 남부럽지 않은 ‘오너 3세’로 태어났지만 특권의식을 지니지 않고 평생을 올곧게 보낸 삶의 궤적을 압축해서 보여줬다는 평가다.
추모사
자신에겐 엄격하고 남에겐 한없이 관대했던…
자신한테는 엄격했지만 남에게는 한없이 관대했다. 사소한 골프 룰도 어기는 것을 보지 못했다. 외국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보라는 권유도 번거롭게 하기 싫고, 우리나라 의료진을 믿는다며 거절했다.
그룹 총수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했고, 자신은 그냥 기업인일 뿐이라고 했다. 이렇게 일찍 가실 거면 좀 더 자신에게 너그럽게 사시다 가시지 왜 그리 모진 삶을 택하셨는지…
이헌재 前 경제부총리 (발췌)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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