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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주 손발 묶는 상법 개정안 나오자… '투기 본색' 드러낸 엘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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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 개정안 논란

기업 사냥꾼에 문 열어주는 정부

외국 투기세력 손잡고 이사·감사 선임 가능
헤지펀드에 한국 간판기업 '안방' 내줄 판
"지배구조개편 몰아치기, 해외자본만 배불려"



[ 장창민/김익환 기자 ]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그룹에 ‘집중투표제 의무화’ 및 ‘대주주 의결권 제한’ 등을 요구한 것으로 25일 확인됐다. 단순히 차익을 챙기려는 기존 공세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주주의 손발을 묶어 놓은 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이사회에 진입시켜 경영권을 넘보려는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엘리엇의 무리한 주장은 ‘묘하게도’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과 맞닿아 있다. 정부의 상법 개정안 요지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전자투표제 의무화 등이다. 대부분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이다.

경제계는 ‘상법 포비아’에 빠져들고 있다. 경영권 방어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기업 이사회 자리 절반 이상이 투기펀드 및 소액주주에 넘어가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 때문이다.


◆경영권 개입 선언한 엘리엇

엘리엇은 지난 23일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공식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한 뒤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라고 제안했다. 배당(순이익의 40~50%) 확대 및 자사주 전량 소각 등도 요구했다.

엘리엇의 추가 요구는 더 거칠어졌다.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고 경영에 개입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엘리엇은 현대차와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정관을 고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라고 했다. 지분이 적은 헤지펀드끼리 손잡고 특정 후보에게 몰표를 던져 자신에게 유리한 이사를 뽑겠다는 의도다.

계열사 정관을 고쳐 합병·분할·주식교환·주식변경 등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라는 황당한 요구도 담았다. 기업 경영을 들여다보기 위해 사외이사로 구성된 독립적 위원회를 설치하고 사외이사 수를 사내이사 수보다 많도록 이사회를 재구성하라는 주장도 했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엘리엇의 주장은 현행법상 수용할 수도, 그럴 이유도 없는 무리한 요구”라며 “현대차그룹을 압박하기 위한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헤지펀드 돕는 상법 개정안

엘리엇의 무리한 요구는 정부의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현실화’된다. 법무부가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은 기업의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이사를 다른 일반 이사들과 분리해 뽑도록 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대주주는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를 분리 선출하는 단계부터 3%로 의결권을 제한받는다.

이사회는 통상 7~9명의 이사(감사위원인 이사 포함)로 이뤄진다. 상법상 자산 2조원 이상 상장회사는 이사 중 3명 이상을 감사위원으로 둬야 한다. 감사위원인 이사는 회사의 업무 및 회계 감독권을 가진다. 지분 쪼개기(3% 이하)를 통해 의결권 제한 규정을 피할 수 있는 투기자본이 감사위원을 뽑아 기업 경영권을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감사위원은 이사를 겸임하기 때문에 외국계 투기자본이 감사위원을 장악하면 무리한 배당이나 자산 매각 등을 요구할 수 있다.

두 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당 새로 뽑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해 한 명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는 집중투표제를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 상법도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개별 회사가 정관에 ‘집중투표제를 도입하지 않는다’고 규정하면 이를 시행하지 않아도 된다. 이를 법으로 의무화해 소수주주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다.

기업들은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외국 투기자본이 국내 기업 이사회에 진출하는 통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국 투기자본 지분율이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최소 비율(1/총 선임이사 수+1)을 넘어서면 ‘몰아주기’ 투표로 무조건 한 명 이상을 원하는 사람으로 뽑을 수 있어서다.

재계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와 집중투표제가 함께 도입되면 기업 이사회 절반 이상이 외국 투기자본에 넘어가 경영권을 크게 위협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사회가 7명으로 구성된 회사라고 가정하면 최소 4명(감사위원 분리선출 3명+집중투표제 1명)을 헤지펀드 등이 원하는 인물로 선임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재벌개혁 정책이 헤지펀드에 먹잇감을 제공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김익환/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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