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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농사 줄이라며 쌀값은 올리고… 정부가 실패 자초한 '쌀 생산조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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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끌어올린 쌀값
농가소득 보전해주겠다며 공공비축 물량 대폭 늘려
쌀값 1년 前보다 40% 올라

부진한 他작물 전환
목표價 미달 때 지급하는 변동직불금 기준가격도
대선 공약 따라 인상 불가피
쌀농사 포기할 이유 사라져



[ 이태훈 기자 ] 정부가 쌀 과잉 생산을 막겠다며 도입한 ‘쌀 생산조정 제도’가 농민들의 외면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쌀값이 떨어지면 정부가 쌀 수매량을 늘려 가격을 끌어올려주고, 일정 가격에 미치지 못하면 직불금을 줘 차액을 보전해주는 마당에 어떤 농가가 쌀농사를 포기하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정부가 자초한 것으로 시행 전부터 예고된 결과란 지적이다. 대통령 공약이라는 이유로 ‘쌀 생산조정제 도입’과 ‘쌀값 인상’이라는 양립 불가능한 두 가지 목표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바람에 국민 혈세만 날리게 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부가 주도한 쌀값 인상

쌀 생산조정제란 벼농사를 콩 옥수수 등 다른 작물 농사로 전환하면 정부가 보조금(㏊당 평균 340만원)을 주는 제도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월 시작한 쌀 생산조정제 신청 접수를 20일 마감한다. 올해 농지 5만ha를 전환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지난 17일까지 목표치의 56%인 2만8000ha만 접수됐다.

쌀 생산조정제가 농가에서 외면받은 가장 큰 이유는 쌀값이 치솟고 있어 농가들이 다른 작물로의 전환을 꺼리기 때문이다. 쌀값은 15일 기준 17만1900원(80㎏당 산지가격)으로 1년 전에 비해 40% 가까이 올랐다. 역대 최고인 2013년 10월의 17만8551원에 근접했다.

쌀값의 고공행진을 유도한 것은 정부다. 2016년 풍년이 들며 쌀값은 그해 10월부터 작년 7월까지 12만원대에 머물렀다. 농식품부는 작년 9월 쌀값을 올리겠다며 “공공비축미 35만t과 시장격리곡 37만t을 합해 총 72만t의 쌀을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시장격리(수매해 창고에 저장하는 것) 물량으론 역대 최대 규모였다. 정부가 지난해 전체 쌀 생산량 397만2000t의 18%를 시장에서 거둬가며 가격 상승을 부추긴 셈이다.

농가 보전액 더 늘어날 듯

정부는 내년에도 쌀 생산조정제 신청을 받을 계획이다. 목표치는 올해와 같은 5만ha다. 올해와 내년 쌀 생산조정제 시행에 책정된 예산은 총 3400억원이다.

하지만 내년에도 이 제도는 농민에게 외면받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쌀 목표가격을 정해둔 뒤 실제 가격이 목표가에 못 미치면 차액의 85%를 지급하는 변동직불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5년마다 목표가를 결정하는데 올해가 이 가격을 정하는 해다. 문 대통령은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쌀 목표가격을 인상하겠다”고 공약했다. 80㎏ 기준 18만8000원인 목표가가 올해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목표가는 정부가 제시한 안을 바탕으로 국회에서 결정된다. ‘표심’을 신경써야 하는 의원들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목표가를 정부안보다 올리는 게 일반적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목표가를 올리겠다고 해 인상폭이 예년보다 클 것으로 예상된다. 농민단체들은 벌써부터 24만원까지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목표가가 높아지면 쌀 생산조정제에 참여할 요인이 그만큼 줄어든다.

혈세로 이뤄지는 ‘쌀 과보호’

농식품부도 쌀 생산조정제를 추진하면서 쌀값 인상 정책을 펴는 것은 모순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도 두 정책이 양립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었다”며 “하지만 대통령 공약이라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1988년부터 작년까지 30년간 1인당 연평균 쌀 소비량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생산량은 34% 감소하는 데 그쳤다. 2000년 이후 쌀 생산량이 소비량에 앞서는 과잉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쌀값이 떨어져도 정부가 받쳐줄 것이란 기대에 쌀 생산이 늘고, 이로 인해 쌀값이 하락하면 또 수매량을 늘리는 식의 악순환만 반복되고 있다.

이 같은 ‘쌀 과보호’는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직불금(1조4900억원), 쌀 매입(7677억원), 공공비축(2532억원) 등에 총 2조5000억원의 예산을 썼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쌀 수매 제도나 직불금 제도는 시장 실패를 낳아 특정 계층에 몰린 리스크를 전 국민에게 나눠 갖게 하는 것”이라며 “쌀 소비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잘못된 정책이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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