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편안에 교육부 소신·철학 안 보여
사실상 원점 재검토… '폭탄 돌리기'
개정 교육과정과 '불일치' 가능성도
교육부가 11일 국가교육회의로 이송한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시안’에는 교육부 안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 그간 도출된 여러 대입 쟁점사항을 정리해 몇 가지 안을 나눠 제시하거나 기대효과 및 우려사항을 병기하는 식으로 시안을 만들었다.
교육부가 우선순위로 미는 안을 정하지 않고 국가교육회의에 공을 넘긴 것이다. 국가교육회의에선 숙의·공론화 과정을 거치도록 해 실질적으로는 대입정책을 여론에 맡기는 형국이 됐다. 때문에 최종 결정시기인 8월까지 대학수학능력시험 절대평가 여부, 수능전형 및 학생부종합전형의 적정비율 등을 놓고 찬반 여론이 한층 격화될 전망이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정작 교육부는 뒤로 빠진 셈이라 주무 부처로서 ‘유체 이탈’식 결정을 자초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사진)의 발표 내용은 이러한 측면을 뚜렷이 보여준다. 김 부총리는 ‘열린 안’을 제시하기로 했다면서 “정부가 구체적 시안을 제시하고 찬반 의견을 듣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국민들이 참여해 숙의·공론화할 수 있도록 하는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정책결정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가교육회의가 숙의·공론화를 거쳐 국민적 신뢰에 기반한 대입제도를 제안하면 교육부는 이를 책임 있게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대입정책에 교육 당국의 소신을 담기보다는 여러 방안을 나열한 수준의 시안 제시에 이어 국가교육회의에서 안을 결정하면 이를 받아 집행하겠다는 얘기다. 교육부 역할을 쟁점 정리와 집행기관에 한정짓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게다가 ‘열린 안’, ‘새로운 정책결정방식’이라는 의미 부여가 대입 개편과 잘 맞을지도 의문이다. 앞서 숙의민주주의 모델로 높은 평가를 받은 원전 공론화위원회와는 다르다. 원전 공론화위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와 신규 원전 건설 중단 여부에 대한 찬반을 묻는, 비교적 단순한 쟁점에 대한 결정이었다. 반면 대입 개편 시안은 훨씬 복잡한 경우의 수를 제시했다. 조정이 쉽지 않다.
교육계 인사들은 우려가 높았다. 한 수도권 대학 입학처장은 “교육부는 국가교육회의에, 국가교육회의는 국민에 결정을 떠넘기겠다는 것이다. ‘폭탄 돌리기’ 같다”고 했다. 또 다른 대학 입학처장도 “원전 찬반과는 성격이 다른 사안”이라고 짚었다. 교원단체 관계자 역시 “욕을 먹더라도 교육부가 원칙을 갖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입장문을 내고 “주무 부처로서 책임 있는 자세라고 보기 어렵다. 국가 교육정책은 마땅히 교육부가 중심이 돼 수립·추진해야 한다”며 “자칫 논의만 무성한 채 교육 현장과 주체간 갈등과 혼란만 재연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도 논평을 통해 “핵심 쟁점에 대해 나열만 하고 모든 결정을 국가교육회의로 넘겨 실망스럽다. (‘1년 유예’ 결정 뒤) 8개월간 연구에서 무엇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대입 개편과 ‘한 몸’인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개정 교육과정은 문·이과 융합을 목표로 고1 때 공통과목을 도입하고 각자의 진로에 맞춰 고2~3 때는 과목을 선택해 듣도록 했다. 이에 발맞춰 고교학점제를 시범 도입했다.
개정 교육과정이 제대로 구현되려면 수능 영향력 약화가 전제돼야 한다. 교육부가 그동안 펼쳐온 정책도 여기에 초점을 맞췄다. 고교학점제를 비롯한 수능 절대평가,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 등이 대표적이다. 정원 동인천고 교사는 “고교 교육과정이 ‘대입 준비기관’에서 벗어나는 게 핵심”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 같은 고교 교육체제와 대입 연계 조율 방안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사실상 원점 재검토로 회귀했다. 개정 교육과정을 토대로 한 수능 절대평가 및 자격고사화가 대선공약이었음에도 그렇다.
김 부총리는 그간의 철학이나 정책 방향과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질의에 “국가교육회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답변을 수차례 반복했다. 대입제도만 떼어내 여론에 맡긴 뒤, 그 결과가 학교 교육과정과 대입의 ‘불일치’로 나타났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는 깊게 고민하지 않은 것처럼 들렸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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