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GM
비난 여론 들끓자 이틀 만에 무단 점거 풀어
"3兆 손실 회사에 성과급 안준다고 폭력 쓰다니…"
9일부터 철야농성…강경 투쟁에 勞勞갈등 조짐도
백운규 "대승적 결단을"…美GM, 최후통첩 가능성
[ 장창민/조재길 기자 ] 한국GM 노동조합원이 6일 사장실을 무단점거한 지 이틀 만에 물러났다. 4년간 3조원의 손실을 본 회사가 성과급을 제때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쇠파이프를 들고 사장실로 몰려가 집기를 부수는 등 ‘막장 드라마’를 찍은 뒤다. 노조의 과도한 강경투쟁에 비판여론이 들끓자 황급히 꼬리를 내렸다는 분석이다.
노조는 오는 9일부터 철야 농성에 들어가기로 했다. 총파업 카드까지 꺼내들 태세다. 자금난에 처한 한국GM의 경영정상화 작업이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파국으로 치닫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조 “다시 사측에 면담 요청”
한국GM 노조는 이날 인천 부평 본사의 카허 카젬 사장실에서 벌이던 점거 농성을 풀었다. 지난 5일 사장실 무단점거에 들어간 지 이틀 만이다. 노조 측은 “점거 농성은 계획적이었던 게 아니라 대화 요청을 거부하는 카젬 사장에게 경고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것이었다”며 “다시 사측에 면담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한택 노조위원장 등 노조 집행부 50여 명은 전날 사장실에 들이닥쳤다. 쇠파이프를 든 일부 노조원은 사장실 집기와 화분을 부수는 등 난동을 부렸다. 노사 합의를 통해 6일까지 1인당 450만원(총 720억원)의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합의했지만 현금이 바닥난 사측이 이를 미룬 데 따른 것이다. 카젬 사장은 노조원들을 피해 황급히 다른 곳으로 옮겼다.
무기한 농성을 예고했던 노조가 이틀 만에 무단점거를 푼 이유는 지나친 강경 투쟁에 대한 회사 안팎의 비난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GM은 지난 4년간 3조원가량의 당기순손실을 냈다”며 “자금난에 휩싸인 회사가 성과급을 주지 않는다고 노조가 사장실에 쇠파이프를 들고 난입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꼬집었다. 일부 노조 조합원 사이에서 집행부의 강경투쟁 기조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면서 노노갈등 조짐도 보이고 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오후 한국GM 본사를 방문해 카젬 사장과 노조 관계자 등을 만나 원만한 노사 합의를 당부했다. 백 장관은 “한국GM의 경영정상화를 위해선 무엇보다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노조가 대승적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한국GM은 심각한 자금난에 빠져 있다. 사측은 자녀 학자금 등 복리후생 비용(연 3000억원) 중 30%가량을 줄여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노조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한국GM은 성과급 외에 희망퇴직을 신청한 직원 2500여 명에게 오는 27일까지 1인당 평균 2억원 안팎의 위로금(총 5000억원)도 줘야 한다.
◆파국 치닫는 한국GM 노사
노조는 이날 한발 물러섰지만 투쟁 수위를 높여갈 방침이다. 9일부터 부평공장에서 노조 집행부와 일부 조합원이 철야 농성에 들어가기로 했다. 다음주 총파업도 준비 중이다. 이미 2일 중앙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조정신청서를 제출했다. 노사 자구안 합의를 앞두고 파업 요건을 갖춰 사측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다.
중앙노동위원회가 열흘간의 조정 기간을 거쳐 12일 조정중지 결정을 내리면 노조는 곧바로 쟁의행위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할 계획이다.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면 한국GM의 경영 정상화는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비용절감 등 자구안에 대해 노사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면 미국 GM 본사의 신차 배정과 중장기 투자(10년간 28억달러) 확약이 틀어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정부와 산업은행의 자금 지원도 어렵게 된다.
업계에서는 GM이 조만간 노사 자구안 합의 시한을 정해 ‘최후통첩’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GM이 한국시장 투자 규모를 줄이고, 최악의 경우 ‘단계적 철수’로 돌아설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한국GM 협력업체들은 이미 쓰러지기 직전이다. 1차 협력업체 300여 곳의 공장 가동률은 50~70%대로 떨어졌다. 올 1분기 매출도 작년 같은 기간보다 평균 30% 이상 급감했다. 은행들까지 어음 할인을 거부하는 등 ‘돈줄’을 죄면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에 처했다는 게 협력업체들의 하소연이다.
장창민/조재길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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