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해 자전소설 '다크 챕터' 출간한 위니 리
등산하던 중 15세 소년에게 성폭행
매일 불면증 시달리며 약물 복용
고통스런 5년 보내고 집필 결심
성폭행 배경과 범죄 요인 분석
피해자 대부분이 나약하고
스스로 수치스러워할 거라는
사회의 고정관념을 깨야
[ 심성미 기자 ]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수치심에 괴로워하고 범죄 피해를 신고하지도 못합니다. 저는 수치심이란 ‘내가 만들어 낸 감정’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성폭력이 발생한 건 내 잘못이 아니라 가해자 잘못이라는 걸 피해자들이 꼭 알았으면 합니다.”
성폭행 피해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소설 《다크 챕터》(한길사)의 저자 위니 리(40)는 26일 서울 서소문로 순화동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수치심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걸 꼭 말해주고 싶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대만계 미국인 위니 리는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영국에서 영화제작자로 활동하던 커리어우먼이었다. 그는 2008년 4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힐즈에서 등산을 하던 중 15세 소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사건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리며 항우울제를 복용해야 했다. 그는 “5년간 고통의 시간을 보낸 이후 마음을 추스르고 나의 경험을 토대로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시점이 교차하며 진행되는 소설은 금세 독자들을 긴장 속으로 몰고간다. 성폭행 순간뿐 아니라 피해자가 사건 이후 어떤 일을 겪어야만 했는지, 어떻게 비로소 고통을 극복했는지에 대해 생생하게 그렸다. 저자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당한 일을 털어놓고 나자 얼마나 많은 주변 여성들이 성범죄로 고통받고 있는지 알게 됐다”며 “경험한 것들을 글로 옮겨 많은 이들과 이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용기를 냈다”고 집필 동기를 설명했다. 그는 “성폭력 피해자들은 나약하고, 스스로를 수치스러워할 거라는 사회의 고정관념을 깨고, 우리는 회복할 힘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저자는 소설에서 가해자의 이야기 역시 피해자만큼이나 비중 있게 다뤘다. 실제 가해자가 아일랜드 유랑민 출신이라는 한정된 정보밖에 없었기에 각종 자료와 유랑민 인터뷰를 참고해 가해자 캐릭터를 완성했다. 소설 속 가해자 소년 조니는 북아일랜드 유랑민으로 사회 하층민으로 그려진다. 아일랜드 주류 사회에서 밀려난 폭력적인 편부 밑에서 자라 결국 아버지처럼 여성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한다. 저자는 “그 소년이 내 인생을 망가뜨리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지만, 무엇이 이 소년을 이렇게 폭력적으로 만들었을까 궁금했다”며 “그 소년의 성장 배경과 범죄 요인을 파악하고 공유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이런 성폭력 문제가 지속적으로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위니 리는 영국 런던정치경제대에서 커뮤니케이션·미디어 박사과정을 밟으며 성폭력에 대한 공개 담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역할 및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또 성폭행 피해자들을 대변하는 단체 ‘클리어 라인스 페스티벌’을 설립해 예술과 토론을 통해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아시아에서는 직장이나 가정에서 성폭력을 당하더라도 범죄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단순히 ‘불편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며 “몇 년 전의 범죄를 폭로하는 피해자에게 ‘왜 바로 신고하지 못했느냐’고 비난하는 이들이 많지만 빠른 대처가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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