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재정수지 비교적 건강한 한국
외화벌이만 치중한다는 낙인 우려
국제원조·구조개혁 등 투자 늘려야"
신민영 <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
나라 경제의 건전성을 재는 잣대로써 경상 및 재정수지를 보면 한국 경제는 상당히 건강하다. 지난해 한국의 경상수지는 785억달러, 국내총생산(GDP) 대비 5.3% 흑자를 기록했다. 글로벌 무역불균형의 주범으로 몰리는 일본(1955억달러, 3.9%)이나 중국(1720억달러, 1.4%)과 비교해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정부의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재정수지 역시 GDP 대비 1.5% 흑자로 추산된다.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 사회보장성기금 수지를 제외한 관리재정수지는 GDP 대비 1% 적자를 기록했지만 2016년의 1.4% 적자보다 줄어들었다. 세계적으로 경상수지 흑자와 재정수지 흑자를 기록한 나라는 독일,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언론을 포함한 우리 사회는 줄곧 경제불안에 시달린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를 올려 한·미 금리가 역전되면 주식 및 채권투자 자금이 빠져나가 환율이 급등하는 등 위기가 발생할까 걱정하고, 한국은행이 금리를 따라 올리면 원화가 강세를 띠어 수출이 줄어들고 가계부채 부담이 급증할까 우려한다. 재정수지에 대한 우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부의 중장기 재정수지 전망에는 늘 관리재정수지 기준 균형재정 목표연도가 포함돼 있고, 관변학자나 국책연구기관도 균형재정을 당위로 보며 국가부채가 늘어날 것을 걱정한다.
물론 이런 불안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 달러가 부족해 경제주권을 빼앗기고 구제금융을 받았던 1997년 외환위기의 트라우마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2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도 경상수지가 중요하고 금융위기가 재발할 경우 뒷수습을 위한 재원이 필요하니 재정건전성이 중요하다는 논리는 인정된다. 그렇지만 한국의 외환건전성이 세계적으로도 좋아진 현재 외환위기를 다시 겪을 가능성은 많이 줄어들었다. 따라서 그보다는 장기저성장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구조개혁방안을 마련하고, 반도체 등 주력제품의 수출급감과 가계부채의 부실화 및 주택가격 급락 가능성 등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각국이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쌓고 있는 상황에서 경상 및 재정흑자를 중시하는 인식의 부작용이 크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한국은 자국 상품을 수출해 외화를 쌓고 자기네 일자리 창출에만 신경을 쓰는 중상주의 국가로 낙인찍혔을 가능성이 크다.
자유무역 확대를 견인해오던 미국의 태도도 바뀌었다. 미국은 냉전시대 자유진영의 최대 수요처로서, 이후에는 세계화를 주창하면서 자유무역 확대를 선도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세계경제 내 비중은 20%로 쪼그라들었고, 제조업이 쇠락해 여기저기서 지역경제가 몰락하면서 속죄양이 필요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자유무역을 옹호하기 어려운 처지에 몰린 셈이다. 우리 경제를 둘러싼 환경이 달라졌음을 인정하고, 각종 유인책을 동원해 민간부문의 투자 및 소비를 활성화한다면 경상수지 과다흑자국으로서 보호주의 예봉과 추세적인 원화절상 압력을 피할 수 있는 근본대책이 될 것이다.
한국은 1인당 소득 3만달러, 세계 10위권 경제규모를 갖춘 선진국이다. 그러나 한국은 그간 스스로를 개발도상국으로 여기며,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에서는 비켜서 있었다. 국제원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이며 세계적인 수요부진 속에서 균형재정 달성을 정책목표로 내세워 왔다.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 비율을 현 수준에서 유지하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GDP의 1.5% 내외로 추산된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재정은 영속하는 국가의 살림살이라는 점에서 가정의 살림살이와는 논리구조가 다르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재정건전성은 소중한 가치다. 그렇지만 ‘재정지출은 낭비’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삶의 질 제고와 성장잠재력 확충,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를 늘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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