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크냐제프의 바흐 무반주 첼로모음곡
서울 새문안로 금호아트홀은 첼리스트들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고백’하는 장소가 됐다. 2013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첼리스트 마르틴 뢰어가 모음곡 중 2·3·6번을 들려줬고, 2015년에는 덴마크의 젊은 첼리스트 안드레아스 브란텔리트가 1~6번 전곡을 이틀 동안 연주했다.
지난 8일 같은 공간에 오른 러시아 첼리스트 알렉산드르 크냐제프(57·사진)는 ‘선곡’을 했던 뢰어, 이틀로 ‘나눈’ 브란텔리트와 달리 하루 저녁에 1번부터 6번까지 차례대로 전곡을 연주했다. 오후 8시에 오른 막은 밤 12시를 코앞에 두고 내렸다. 물론 15분씩 두 번의 중간 휴식시간이 있었다.
1995년부터 모교인 모스크바음악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크냐제프는 국내 팬들에게 친숙하진 않다. 필자도 그들 중 하나였지만, 2016년 그의 내한 공연 때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당시 비가 와서 연주회장(서울 여의도 KBS홀)의 공명이 평소보다 심했는데, 그의 소리는 객석 하나하나에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첼리스트에게 기대하는 안정감을 충족시켜 준 무대였다.
이번 공연에서도 그 무게가 단번에 느껴졌다. 거대한 선박을 출항시키는 뱃고동 같은 소리였다. 바흐를 실은 크냐제프호(號)는 너울너울 물결을 타고 넘나들었다. 그는 ‘자연스러움’과 ‘자유스러움’으로 일관했다. 첼리스트들이 경전처럼 다루는 이 곡에 담긴 정교한 짜임새보다는 자신의 리듬을 중시했다. ‘바흐 가라사대’보다는 자신의 즐거움을 앞세운 연주였다.
각 모음곡에서 두 번째로 연주되는 ‘쿠랑트’에서 그는 자신만의 자유로운 속도로 질주하곤 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순간이었다. 2번의 쿠랑트에서는 이탈음이 들리기도 했다. ‘부분’을 따지면 섬세함이 아쉬웠다. 하지만 그는 부분보다는 작품 ‘전체’를 더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처럼 활기찬 리듬은 1번부터 6번까지, 특히 각 곡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지그’에서 돋보였다. 단순히 빠르기만 한 연주가 아니었다. 각 프레이즈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숨을 쉬는 듯했다. 자연스럽다 못해 때로는 투박하게 들리는 소리와 달리, 그의 오른손이 빚는 보잉(활놀림)은 손목의 미묘한 뉘앙스를 살린 섬세한 움직임이 배어 있었다.
전곡이 끝났을 때 시계는 밤 11시40분을 가리켰다. 땀에 흠뻑 젖은 그는 앙코르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 ‘샤콘느’를 첼로 편곡 버전으로 들려줬다. 연주는 12시를 몇십 초 앞두고 끝났다. 손가락은 지쳐 보였지만, 그의 지친 기색 없는 표정과 보잉할 때마다 흔들리는 몸은 밤새 바흐를 노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송현민 < 음악칼럼리스트 bstsong@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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