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 등 치료 거부 47명 사망
절반은 환자 아닌 가족이 결정
[ 이지현 기자 ] 2008년 2월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폐암 조직검사를 받던 76세 김모 할머니가 과다출혈로 의식불명에 빠졌다. 가족들은 김 할머니가 평소 정갈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기 원했다며 치료 중단을 요청했지만 병원은 거부했다. 가족은 병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다. 이듬해 대법원은 연명장치를 제거하라고 판결했다. 논란이 있은 지 10년이 지났다. 다음달 4일부터 김 할머니와 같은 환자들은 법정소송 없이 연명의료를 거부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을 앞두고 지난해 10월16일부터 3개월간 시범사업을 했더니 말기암 환자 등 54명이 본인이나 가족 의지에 따라 연명의료를 거부했다고 24일 발표했다. 이 중 47명이 세상을 떠났다. 연명의료는 치료 효과 없이 환자 생명만을 연장하기 위해 시도하는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혈액투석·항암제투여 등을 말한다.
담당 의사와 전문의 한 명 등 두 명이 치료해도 회복할 가능성이 없고, 수개월 안에 사망할 것이라고 진단한 암, 에이즈,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경화 환자는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내용의 연명의료계획서를 쓸 수 있다. 이 환자가 죽음에 임박하면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된 의료기관에서 의사 두 명의 판단에 따라 연명치료를 받지 않게 된다.
연명의료계획서를 쓰지 않아도 가족 두 명 이상이 평소 환자가 연명의료를 거부했다는 뜻을 전하면 연명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다. 23명이 이 같은 절차를 따랐다. 22명이 사망했다. 환자가 의견을 밝힐 수 없을 때는 직계 가족이 모두 동의해야 한다. 건강할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알릴 수도 있다. 시범사업 기간 9336명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썼다.
연명의료결정제도는 환자가 직접 자연스러운 죽음을 택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시범사업 기간 환자가 죽음을 결정한 비율은 절반에 그쳤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줄이기 위해 대상 환자와 거부 가능한 시술 종류를 늘리는 등 보완할 사항이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복지부 관계자는 “임종문화가 바뀌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보완이 필요한 내용에 대해 법 개정 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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