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5월 매수자문 금지한 '외부감사법 개정안' 시행
삼일회계·딜로이트안진 등
법 시행 앞두고 벌써부터 신경전
[ 이지훈 기자 ]
삼일회계법인은 2015년 2월 삼성전자가 마그네틱 보안전송기술을 보유한 미국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루프페이를 인수할 당시 인수 자문을 맡았다. 하지만 삼일회계법인은 더 이상 삼성전자의 이 같은 기업 인수합병(M&A) 거래를 자문할 수 없게 됐다. 삼일회계법인이 삼성전자의 외부감사인이기 때문이다.
회계법인이 감사를 맡고 있는 회사의 인수 자문을 금지한 외부감사법 개정안 시행이 내년 5월로 다가오면서 대기업 M&A 거래에서 다른 회계법인 일감을 따오기 위한 물밑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삼성전자처럼 굵직한 M&A가 많은 기업의 감사를 맡고 있는 회계법인은 이번 법 개정으로 일감 손실 타격이 클 수밖에 없어서다. 회계법인들은 “지나친 규제”라며 불만을 드러내면서도 다른 회계법인이 감사를 맡고 있는 회사의 M&A 일감을 따내기 위해 치열한 눈치작전에 돌입했다.
19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회계 투명성 강화의 일환으로 내놓은 ‘주식회사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 9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각 회계법인 ‘딜본부’가 바빠졌다. 과거에는 감사 대상 회사의 매도 자문만 금지했지만 개정안은 매수 자문까지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외부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은 삼성전자의 M&A 거래에서 실사·자문 등 어떠한 용역도 수주할 수 없게 됐다.
정부는 회계법인들이 비감사 일감을 따내기 위해 감사를 소홀히 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에 따라 선진국 수준으로 규제를 강화했다. 하지만 회계법인들은 해외의 경우 예외 규정을 통해서 오히려 폭넓게 비감사 용역을 허용하고 있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동시에 물밑에서는 법 개정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치열한 ‘일감 뺏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외부감사인의 일감을 비교적 쉽게 따내던 관행에 제동이 걸리면서 회계법인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업체는 업계 1위 삼일회계법인이다. 회계법인 간에 서로 일감을 주고받으면서 그 영향이 당초 우려보다 제한적일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M&A 단골손님인 주요 대기업을 잃을 경우 심각한 타격이 올 수 있다. 삼일회계법인은 대형 M&A 거래의 단골손님인 CJ, 삼성전자, LG전자, 네이버, 카카오, KB금융지주 등의 외부감사인을 맡고 있다. 삼정KPMG(SK텔레콤·현대중공업·포스코·하림), 딜로이트안진(현대자동차·한화·신세계·LS), EY한영(롯데케미칼·두산·농협금융지주·한진) 등 국내 대형 회계법인들도 제도 개선의 영향을 면밀히 분석 중이다.
업계는 결국 다른 회계법인이 놓친 기업의 일감을 얼마나 빼앗아 오느냐에 회계법인 딜본부의 명운이 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내년 각 회계법인의 실적은 다른 회계법인이 규제 때문에 놓친 일감을 얼마나 가져오느냐에 달렸다”며 “내년 5월 법 시행을 앞두고 벌써부터 회계법인 간 일감 따내기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일부 회계법인은 딜본부를 감사본부와 분리해 별도의 법인을 세우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회계법인 관계자는 “법 개정으로 정상적인 영업활동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법인을 분리하는 회사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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