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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명저] "경제·사회 개방성이 강대국 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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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케네디 《강대국의 흥망》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1500년대 세계 최강대국은 중국 명(明)나라였다. 그렇게 막강했던 중국이 유럽 국가들에 뒤처진 것은 역설적으로 막강한 중앙집권적 권력 때문이었다. 통제를 선호하는 절대적 권력은 개방과 포용으로 나아가기보다 폐쇄적이고 배타적으로 흘렀다. 이는 사상과 경제에 대한 간섭으로 이어졌다. 반면 봉건 영주들의 자유경쟁이 활발했던 유럽 각국은 부(富)와 군사력을 갖춘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자유 경쟁과 국가의 간섭이 결국 유럽과 중국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지난 500여 년간 수많은 강대국이 흥하고 쇠했던 원인은 무엇일까? 한 국가가 강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 어떤 변화와 도전에 직면하는가? 앞으로는 어떤 국가들이 강대국으로 떠오를까?

폴 케네디 미국 예일대 석좌교수가 1988년 출간한 《강대국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한경BP)은 국제정치학의 영원한 숙제인 이런 궁금증을 파고들었다. 그는 150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약 500년의 역사를 주요 국가와 큰 사건 중심으로 분석했다. 강대국 흥망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도구로 ‘경제력’과 ‘군사력’을 주요 변수로 삼았다.

중국과 유럽 운명 가른 '권력의 통제'

방대한 역사 자료를 두 가지 변수로 분석한 결과 “적절한 군사력을 유지하면서 경제 성장에 치중한 국가들이 새로운 강대국으로 떠올랐다”는 게 케네디 교수가 내린 결론이다. 그는 “강대국이라도 과중한 군사비를 무한정 감당할 수 없다. 경제력과 군사력의 균형 상태가 깨어지는 이른바 ‘제국의 과도 팽창’은 쇠퇴의 시작”이라고 진단했다. 르네상스 이후 세계 패권이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으로 넘어간 일련의 과정도 이런 관점에서 설명했다.

케네디 교수는 강대국의 성쇠(盛衰)에서 보편적인 사실을 끄집어냈다. 경제 주체의 자율과 경쟁이 보장되는 국가가 강대국으로 부상한다는 것이다.

“거의 통제할 수 없는 상업과 상인, 항구와 시장의 발달이 가져온 정치·사회적 결과는 대단했다. ‘야만(野蠻) 지역’에서 풍요로운 곳으로 올라선 1500년대 유럽의 기적은 상업의 발달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통일된 정치권력이 존재하지 않아 가능했다. 유럽 국가들은 시장경제와 공생관계를 맺고 부국강병에 나섰다. 중국의 명, 소아시아의 오토만(Ottoman) 등 동방 제국들은 유럽 국가보다 위세 있고 조직적으로 보이기는 했지만 폐쇄적이고 획일성을 강요한 탓에 결과적으로 엄청난 경제·사회적 손실을 맛봐야 했다.”

강대국 쇠퇴 원인(경제와 군사력의 균형 파괴)도 개방성의 상실로 설명된다.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을 올리고 관세 장벽을 쌓아 올려 전비(戰費)를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 주체의 자율성과 경제의 개방성이 침해받는다.

“강대국의 세 가지 비결은 이미 애덤 스미스(영국의 경제학자)가 간파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평화와 시장경제에 활력을 더해주는 낮은 세금, 관용적인 사법체계 이외에는 필요한 것이 없다. 의회가 왕권을 통제했던 영국은 국가의 간섭이 적어 오랫동안 사회와 경제의 개방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 스페인 통치자들은 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세 가지 비결)를 죽여버리는 과오를 범했다. 국력 쇠퇴는 필연적이었으며 스페인은 패권국 자리를 영국에 내줘야 했다.”

강대국 비결은 자유로운 시장경제

경제력과 군사력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고 두 가지 모두 팽창시킬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케네디 교수는 신(新)기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기술의 진보는 경제력과 군사력의 새로운 균형을 가능하게 한다. 실제로 석탄 등 지치지 않는 ‘생명 없는 동력원(動力源)’의 사용은 생산과 부(富)의 엄청난 증가를 실현시켰다. 새롭게 강국으로 등장한 나라들은 더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끌어내리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신기술을 발전시켰다.”

《강대국의 흥망》은 역사에 국한하지 않고 국제정치학과 경제학을 폭넓게 아우른다. 하지만 학자의 논리적인 설명이 항상 현실 세계를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1988년에 나온 책을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몇 가지 예측이 빗나갔다.

케네디 교수는 세계가 미국과 소련의 양극 체제에서 다극화된 ‘5강(强)체제’로 재편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당시 소련은 체제 경쟁에서 밀리고 있었고, 미국은 긴 불황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따라서 예전의 힘을 찾아가는 듯했던 서유럽과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던 중국, ‘제2 경제 대국’(집필 당시 기준) 일본이 양극 체제를 허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냉전체계 붕괴와 일본 경제의 거품 붕괴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국가 흥망성쇠의 기본 원리를 확인시켜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규제와 통제를 가하는 나라보다 개인과 기업이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방적인 나라들이 강대국으로 긴 생명력을 발휘했음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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