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스비도 삼성페이도 매우 부진한 상황
고객중심 혁신 아닌 추격의 산물이기 때문
세상에 없는 것으로 선도할 수 있어야
이경전 < 경희대 교수·경영학, 한국지능정보시스템학회장 >
삼성전자는 2014년 8월 미국 기업 스마트싱스(2000억원 규모), 2015년 2월 루프페이(2700억원 규모), 2016년 10월 비브랩스(2400억원 규모)를 인수했다. 스마트싱스 인수는 스마트홈 허브 서비스를, 루프페이 인수는 스마트 결제서비스를, 비브랩스 인수는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를 위한 것이었다. 필자는 삼성전자의 이런 노력에 박수를 보냈고 응원해왔다.
그러나 2017년 10월 현재 상황은 좋지 않다. 비브랩스를 통해 출시한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 빅스비는 잦은 오류와 서비스 지연 등으로 위기 상황에 빠져 책임자를 교체했고, 루프페이를 통해 내놓은 삼성페이 역시 부진한 상태다. 스마트싱스도 구글의 네스트, 캐나다 토론토 소재 기업 에코비 등에 비하면 스마트홈 시장에서 매우 부진한 상황이다.
왜 이렇게 됐는가를 이제는 짚어볼 때다. 여러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겠지만 필자는 위 세 가지 모두 고객 중심 혁신의 결과가 아니라 선도사업자에 대한 추격의 결과라는 점을 주목하고자 한다. 스마트싱스 인수는 구글이 2014년 1월 스마트 온도조절기 기업 네스트를 인수하자 이에 대응해 추격한 결과다. 루프페이 인수는 2014년 9월 발표된 애플페이를 추격한 결과고 비브랩스 인수는 2014년 11월 아마존이 음성인식 스피커 에코를 출시하고 2016년 3월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기면서 불게 된 인공지능 붐에 따라 아마존의 에코를 추격한 결과다.
세 사례 모두 추격의 결과가 좋지 않다. 추격은 선두주자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에만 그 추격이 의미가 있다. 애플페이는 방향을 잘못 잡았다. 그래서 여전히 부진하다. 방향을 잘못 잡은 선두주자를 추격하고 있는 삼성페이는 그보다도 못한 결과를 내고 있다. 선두주자가 나타났다고 해서 그저 추격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또 추격은 선두주자의 전략과 동기, 내재 역량을 파악하지 못한 채 겉모습만 벤치마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아마존의 인공지능 스피커 에코는 파이어TV 서비스에 주요 기능으로 적용된 음성인식 리모컨 서비스를 확장한 결과다. 애초에 인공지능 서비스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버튼식 리모컨에 사용자 편의성을 위해 음성인식 기능을 넣은 것이고,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음성인식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하에 선도적으로 음성인식 스피커 에코를 내놓은 것인데, 한국의 아마존 에코 추격자들은 허둥지둥 인공지능 스피커를 출시하고 있다. 그 이전에 사용자 편의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한 흔적은 많지 않다.
이제 한국 기업들은 추격의 추억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조만 할 때는 선도 기업의 제품을 뜯어다가 역공학(리버스엔지니어링)을 통해 그 성능을 추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제품이 서비스와 결합한다. 서비스는 역공학하기가 어렵다. 서비스는 네트워크와 결합돼 있고, 알고리즘이 결합돼 있으며, 데이터가 결합돼 있다. 또 이런 스마트 커넥티드 제품은 제품 경쟁이 아니라 제품군 경쟁이 되고, 제품 성능 경쟁이 아니라 서비스 네트워크 규모 경쟁이 되므로 고객 중심의 혁신을 통한 선도 전략이 추격 전략보다 훨씬 유리하다. 아마존은 1995년 창업 이래 계속 선도적으로 뛰는 전략을 통해 매출과 기업가치를 지속적으로 키워나가고 있다.
정부 연구개발 사업도 추격의 추억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연구과제 제안서를 쓰다 보면 연구개발 목표에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적시하게 돼 있고 이를 언제까지 따라잡겠다는 형식이 꼭 있다. 세계에서 없는 것을 제일 처음 하겠다는 연구집단은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을 받기 어렵고, 추격하겠다고 하면 연구개발 지원을 받기가 더 수월해진다. 이는 민간 벤처투자 부문도 마찬가지다. 미국 일본 중국 유럽에 있는 비즈니스 모델의 한국형을 만들겠다고 하면 투자받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그러나 세상에 없는 세계 최초의 모델과 기술, 제품을 만들겠다고 하면 평가해줄 사람이 많지 않다. 이것이 아직 한국의 상황이다.
이제는 벗어날 때도 됐다. 추격의 추억에서 벗어나자. 한류는 추격의 산물이 아니지 않는가.
이경전 < 경희대 교수·경영학, 한국지능정보시스템학회장 >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