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3주년 - 수상자 3인에게 듣는 경제해법
황윤재 서울대 교수, 고령화에 따른 성장률 하락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해법은 결국 산업구조 재편
황성하 KAIST 교수, 기술혁신으로 구조 급변
관(官) 주도의 성장전략은 되레 자원배분만 왜곡시켜
이수형 서강대 교수, 정부는 규칙만 세우고
창의적 사업활동 보장해야 성장동력 창출할 수 있어
[ 김은정 기자 ]
“실효성이 떨어지는 정책은 과감하게 재정비하고 시장 주도로 성장동력을 발굴해야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올해 제36회 다산경제학상을 받은 황윤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12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열린 시상식 직후 이같이 말했다. 추락하는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제조업에 이어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까지 선진국과 중국에 낀 샌드위치 신세를 벗어나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유연한 정책 프레임 필요”
계량경제학에 30여 년간 매진해온 황 교수는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 저성장 고착화, 각국 금융시장 간 연계성 심화 등으로 기존의 성장 정책 프레임(틀)이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며 “효과 없는 정책을 신념을 내세워 고수하기보다는 하루빨리 재검증하고 새로운 프레임을 설계하는 게 이득”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출산율 정책을 실례로 꼽았다. 지금까지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지만 출산율 변화는 크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다양한 국가의 사례에 비춰봤을 때 저출산이라는 대세를 바꾸기 위해 예산을 추가 집행하는 것보다 기존 정책 중 효과가 미미한 프로그램을 정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대신 노인 부양, 이민 제도 고려 등 저출산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 해결에 역량을 집중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떨어지는 경제 기초체력
한국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는 대내외 변수가 많아 경제 기초체력을 강화하는 게 시급하다는 의견도 내놨다. 황 교수는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이 올해 3% 성장을 달성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발표했다”며 “단기적으로는 세계 경제 회복에 따른 수혜로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겠지만 내수 시장의 구조적 문제, 국제 통상환경 악화,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 등으로 장기적인 성장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 데이터를 활용해 총소비, 총저축, 총노동생산성이 경제 주체의 나이 분포에 어떻게 의존하는지를 특정한 가설을 세우지 않은 비모수적 방법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고령화가 총노동생산성을 장기적으로 하락시키고 총소비와 총저축에도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결과를 얻었다.
황 교수는 “4차 산업혁명 등의 변수를 고려하면 고령화로 인한 경제성장률 하락은 더 심각해질 것”이라며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기적 해법 중 하나가 산업 구조 재편을 통한 경제 기초체력 강화”라고 강조했다.
◆“민간 주도로 성장동력 발굴”
이날 45세 이하 유망 학자에게 주는 ‘다산 젊은 경제학자상’을 받은 황성하 KAIST 경영공학부 교수와 이수형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4차 산업혁명에 맞춰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 과정에서 민간 부문의 역할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기술 혁신으로 경제 구조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정부 주도로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며 “오히려 자원 배분을 왜곡하고 시장이 자발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꺾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규제 문제로 한국에서 사업을 철수한 세계 최대 차량공유업체 우버나 빅데이터 수집과 통합이 극도로 제한적이라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핀테크(금융기술)를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이 교수는 “사례별 검토가 필요하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정부가 주도하는 마이크로 매니지먼트(세부 사항까지 통제하기) 형태의 산업 정책과 규제는 더 이상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어려워졌다”며 “정부가 이 같은 사실을 인식하고 민간이 지켜야 할 규칙을 신중하게 정한 뒤 이런 규칙 안에서 개인과 기업의 창의적인 사업 활동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사전 검증에 기반한 정책이 추진될 때 시행착오를 줄이고 더 빠르게 성장 잠재력을 모색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 교수는 “경제 정책은 특정 이론보다 데이터와 가설 검증을 통해 모색돼야 한다”며 “최저임금 인상이나 법인세 인상도 의도된 정책 효과가 나타날지 경제학 이론만으로는 사전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전 정책이나 해외 사례 등을 연구해 사전에 정책 효과를 충분히 검증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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