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대한 검찰 수사가 100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검찰이 지난 7월 14일 KAI 본사를 압수수색한 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는 KAI 수사를 살펴봤다.
◆방산비리에서 경영비리로 탈바꿈
시작 때만 해도 기세등등했다. ‘문재인표 방산비리 1호 수사’였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산비리는 단순한 비리를 넘어 안보에 구멍을 뚫는 이적행위”라고 방산비리 척결을 강조하던 때 맞춰 KAI 수사는 닻을 올렸다. 때마침 감사원도 KAI의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이 불량이라는 감사 결과를 내놓으며 수사 명분을 제공했다.
검찰은 7월 14일에 이어 같은 달 18일과 26일 KAI 본사와 서울사무소, 협력사 5곳을 추가로 압수수색했다. 비슷한 곳을 여러번 압수수색하는 건 대부분 기대했던 월척이 없을 때 나오는 검찰의 움직임이다.
예상대로 지난달 초까지 구속된 KAI 전·현직 임원이 한 명도 없었다. 구속자는 KAI 본사가 아닌 협력사 대표 1명이었다. 그것도 방산비리와 무관한 채용비리였다. 무기를 생산하고 거래하는 과정에서 원가 부풀리기, 비자금 조성, 정관계 유착 등으로 이어지는 방산비리의 본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 때문에 처음부터 ‘빈 손 수사’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이 때쯤 KAI 수사의 간판도 바뀌었다. KAI 앞에 붙던 ‘방산비리’라는 말이 사라지고 ‘경영비리’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런 행보는 지난해 있었던 롯데 경영비리 수사와 비슷했다. 처음엔 ‘롯데 비자금 조성 의혹’이라고 하다가 ‘롯데 경영비리’로 탈바꿈했다. 이쯤하면 롯데그룹처럼 KAI도 모든 경영 행위를 다 보겠다는 얘기다. 검찰의 고질병인 ‘먼지털이식 수사’, ‘별건 수사’가 시작되는 셈이다. 검찰총장의 단골 거짓말인 ‘외과 수술식의 정교한 수사’는 딴 나라 얘기로 치부된다.
◆법원과 영장 싸움으로 관심 전환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KAI의 모든 비리가 불거져 나왔다. 채용비리, 납품비리,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까지 비리의 종합선물세트처럼 비쳐졌다. 하지만 ‘구속이 곧 유죄’라는 선입견이 강한 한국의 사법 지형에서 검찰 수사의 성패는 구속자 수에서 나온다. 그런 점에서 초중반전까지 KAI 수사는 낙제점에 가깝다.
9월 중순까지 검찰의 성적은 2승 4패였다. KAI와 관련해 6번 영장을 청구해 4번 기각됐다. 15명을 부당 채용한 혐의를 받는 KAI 경영지원본부장 이모씨에 대한 영장은 두 차례나 기각됐다.
이 때 검찰이 들고 나온 위기 모면 카드는 ‘남탓’이었다. 모든 책임을 법원으로 돌렸다. “법원이 근거없이 보수적 잣대를 적용해 영장을 발부해주지 않는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관심의 초점을 검찰과 법원의 ‘영장 전쟁’으로 몰고 가면서 비판 여론을 피해갔다.
◆몸통 구속으로 기사회생했지만
지지부진해던 KAI 수사 분위기는 지난달 하순 바뀌었다. 사실상 ‘넘버2’ 역할을 해온 김인식 KAI 부사장이 지난달 2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만 해도 검찰이 불리할 것 같았다.
하지만 검찰은 강공을 택했다. 같은날 하성용 전 KAI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해 이틀 뒤인 지난달 23일 영장을 발부받았다. 수사 시작 60여일 만에 KAI를 둘러싼 모든 의혹의 정점에 있는 하 전 대표의 신병을 확보한 것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수사의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진정한 수사는 지금부터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방산비리의 본류가 나와야 하고 비자금 조성이 사실임을 확인돼야 하기 때문이다. 하 전 대표를 구속시킬 정도의 사안이면 유력 정관계 인사 이름이 나와야 검찰 체면도 선다.
또한 하 전 대표의 후임으로 KAI 최고경영자(CEO)가 누가 맡느냐도 관심사다. KAI의 구조적 비리가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 하 전 대표를 구속시킨 뒤 친문 인사가 KAI 대표를 맡게 되면 야권을 중심으로 비판여론이 일어날 수 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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