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친지 간에 '쌓인 갈등' 폭발
명절 직후 이혼신청 평소의 2배
차례상 앞 다툼, 법정 가기도
가정폭력, 집안망신 당할까 쉬쉬
마음에 큰 상처…귀성 포기도
"더 배려하고 예의 지켜야"
[ 성수영 기자 ] 경남의 한 양반가 출신 강모씨(62)는 이번 추석 때 고향에 내려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난 설 명절 때 친척들끼리 벌인 ‘패싸움’의 앙금이 가시지 않아서다. 사소한 말다툼이 술기운에 주먹다짐으로 번지며 그는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 폭행을 행사한 친척에게 치료비 한 푼 받지 못했다. 강씨는 “‘집안 망신’이라는 어르신들의 만류로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 게 후회된다”며 “다시는 명절에 큰집에 내려가지 않을 작정”이라고 했다.
◆명절 가정폭력 신고, 하루 1000건 육박
추석은 가족과 친지가 오랜만에 둘러앉아 돈독한 정을 나누는 시간이라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누적된 갈등이 불거지면서 가정 폭력이나 이혼 등 파국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29일 경찰청에 따르면 2014년 설부터 올해 설까지 명절 연휴에 접수된 가정 폭력 신고는 3만1157건에 달한다. 연휴 기간 하루에 974건꼴이다. 이는 연중 하루 평균 676건보다 44% 많은 규모다. 쉬쉬하며 신고하지 않는 경우도 빈번해 실제 가정 폭력은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게 경찰 측 추정이다.
명절 갈등이 가정 파탄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줄을 잇는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지난해 설과 추석 전후 10일간 접수된 이혼 신청은 하루 평균 577건이다. 특히 명절 직후 3~4일은 하루 700건이 넘었다. 평상시 하루 평균 이혼신청(298건)의 두 배를 웃도는 수치다.
방정현 법무법인 정앤파트너스 변호사는 “평소 쌓였던 부부 갈등이 명절 때 폭발하면서 이혼소송까지 이어질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덕담 아닌 덕담’에 소송도 다반사
차례상을 앞에 놓고 벌이는 언쟁이 법정다툼으로 비화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몇 년 전 서울 노량진 사육신묘 공원에서는 사육신 후손들끼리 싸우다 차례상까지 뒤엎는 소동이 벌어지며 쌍방 고소전으로 이어졌다. 종친회에서 9년간 총무로 일하던 김모씨(72)가 차례 진행 도중 대종회장에게 욕설을 퍼부어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장례식이나 제사, 예배 또는 설교 등을 방해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명절 기분에 마음이 느슨해지는 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조언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명절 분위기에 휩쓸려 주변 동료나 이웃 주민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덕담 아닌 덕담’을 쏟아내며 상처를 주는 일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친지여도 생활환경과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배려와 예의를 갖추는 것이 필수”라고 주문했다.
시대 변화에 맞게 명절 풍속을 개선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김미영 한국국학연구원 연구부장은 “제사 문화 규범인 주자가례에는 명절 차례상은 간소하게 제철 과일만 올린다고 기록돼 있다”며 “관습에 얽매이기보다 가족 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도록 실용적인 차례 풍습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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