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한 달' '1년 살기' 등 새로운 라이프 트렌드로
[ 배현정 기자 ] 특정 지역에 장기간 체류하는 ‘롱스테이(long-stay)’가 인기를 끌고 있다. 진원지는 제주다. 4~5년 전 제주에서 ‘한 달 살기’가 주목을 받았다. 이후 ‘보름 살기’ ‘1년 살기’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며 중장기 여행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체류 지역도 다양해져 ‘발리 한 달 살기’ ‘치앙마이 한 달 살기’ ‘유럽 한 달 살기’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경기도에 사는 홍영선 씨 가족은 지난 5월 초등학생인 큰아이와 유치원생인 둘째 아이를 데리고 제주도로 한 달 살기를 다녀왔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아이들은 마당에서 뛰어놀고, 저녁이 되면 가족이 모두 붉게 물드는 석양을 보면서 매번 처음인 것처럼 감탄했다.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남편이에요. 매사 계획한 대로 일을 끝내야 하는 정확한 사람인데,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여유로워졌어요.” 홍씨 가족은 제주도가 주는 ‘자연의 힘’에 반해 지난 여름방학에 두 번째 ‘제주 한 달 살기’를 다녀왔다.
이선미 씨 가족은 외국에서 롱스테이를 경험했다. 지난해 가을 생후 20개월 된 아들과 함께 유럽의 지중해로 불리는 몰타에서 석 달 동안 살다가 왔다. 처음엔 욕심이 많았다. 미술을 전공한 만큼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방문하려 했다. 이내 마음을 비웠다. 아이가 어린 탓도 있지만 그냥 동네를 느릿느릿 걸어다니는 즐거움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이씨는 “유럽 여러 나라를 바쁘게 여행하는 것을 포기한 것이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롱스테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현대인에게 가장 비싼 가치인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여행이어서다. 진짜 어렵게 시간을 내더라도 조급증이 가득하다. 귀한 시간과 돈을 투자한 만큼 뭔가 성취해야 한다는 압박에서다. 경험자들은 롱스테이를 떠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도시 삶의 방식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홍씨는 “처음 제주에 왔을 때는 욕심이 많았다. 뭔가 자연 속에서 깨달음을 발견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도 있었다. 그러다 ‘내가 왜 여기 제주에 왔을까’ 생각하면서 욕심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했다.
세계 30여 개국을 에어비앤비를 통해 여행하고 《한 달에 한 도시》라는 책을 낸 김은덕·백종민 씨 부부는 평소 좋아하는 취미와 연결시켜 롱스테이 장소를 선택할 것을 추천했다. “축구가 좋다면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에서, 와인을 좋아한다면 보르도나 토스카나 지역에서 한 달을 머물 수 있고, 음악을 즐긴다면 오페라 축제가 열리는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한 달을 머무는 게 좋다”는 것이다.
김진세 고려제일정신과의원 원장은 “한 달 살기와 같은 장기 여행은 유럽이나 일본 등에선 오래된 여행 스타일”이라며 “우리나라도 이제 생존의 차원을 떠나 ‘삶의 질’을 생각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배현정 한경머니 기자 gr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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