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경제부 기자) 이일형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기준금리는 금통위원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중앙은행인 한은이 통화신용정책을 담담하고,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 굳이 금통위원이 왜 이런 얘기를 기자들에게 강조했을까요.
전후 사정을 모르면 조금 의아한 일일 수 있습니다. 발단은 대통령 경제교사 역할을 하는 김현철 경제보좌관이 한 기준금리 관련 발언이었습니다. 김 보좌관은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를 언급하면서 “기준금리가 연 1.25%인 상황은 사실 좀 문제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획재정부 장관이 고압적으로 기준금리를 너무 낮춰버리는 바람에 가계부채 문제가 불거졌다”는 언급도 했습니다.
청와대 발(發) 저금리 지적 발언 직후 채권금리가 연중 최고치로 치솟는 등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연내 기준금리 인상설이 불거지면서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진 겁니다.
한은의 독립성 논란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정부 당국자가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식의 발언을 하면서 한은에 압박을 가하는 모양새가 된 탓입니다. 상황이 이렇자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주열 한은 총재와 오찬 회동에서 “기준금리는 금통위 고유 권한이며 정부 당국자가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못박았습니다. 이 위원이 원론적인 금통위 역할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고요.
저금리로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부동산 투기가 심해졌다는 데에는 상당수 전문가가 동의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기준금리 인상을 내놓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다만 기준금리 인상은 양날의 칼입니다. 부동산 투기를 줄일 수는 있지만 한계가구의 부채 상환 부담을 크게 키워 가계부채의 뇌관을 건드릴 수도 있습니다. 세밀하고 면밀한 검토와 국내외 금융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이 요구된다는 얘기입니다.
이번 청와대 발 저금리 지적 발언으로 한은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빠지게 됐습니다. 이 총재는 이미 지난 6월부터 통화정책 재조정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명확한 시점을 밝히진 않았지만 정부의 가계부채 대책 효과를 지켜본 뒤 논의에 나설 것이라는 게 시장의 관측입니다. 저금리 장기화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금통위원도 나왔습니다. 이달 초 공개된 7월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한 금통위원은 “완화적 통화정책의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 기조여서 지금처럼 동결을 유지한다면 곧 한국보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높아질 수 있습니다.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소득 주도 성장 등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과 공조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이처럼 한은이 일단 시장에 기준금리 인상을 위한 신호를 준 상태에서 정부 당국자가 기준금리 인상을 압박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겁니다. 혹여 경제 상황에 따라 금통위가 기준금리 인상 결정을 내리더라도 ‘청와대의 의중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피하기 어려워진 거죠.
당장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는 오는 31일 열립니다. 김 보좌관의 발언 때문에 한은의 머릿속만 더 복잡해진 겁니다. 기준금리 문제에 정부가 개입하는 건 한은법에도 위배됩니다. 물론 학계와 금융시장에서 통화정책에 대해 자유로운 의견이 오고 가는 건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가 기준금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금융시장에 혼란을 증폭시키고 정부와 한은의 관계만 불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끝) /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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