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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바스티유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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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매년 7월14일이 되면 프랑스 파리는 거대한 축제의 장(場)으로 변한다. 오전 10시30분, 개선문 초입 샹젤리제 거리에선 대대적인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하늘에선 공군 비행시범단이 프랑스를 상징하는 청색·백색·적색 삼색(三色) 연기를 내뿜으며 축하비행을 벌인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는 축제의 백미(白眉)로 꼽힌다.

프랑스 최대 국경일인 ‘바스티유 데이(Bastille Day)’ 풍경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도화선이 된 1789년 7월14일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바스티유는 영국과의 백년전쟁 때 파리 동쪽을 지키기 위한 요새였고 정치범 수용시설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날 부르봉 왕조의 압제에 분노한 시민 1만여 명이 격렬한 전투 끝에 그곳을 점령하고 정치범을 석방시켜 혁명의 서막을 열었다.

혁명의 절정은 루이16세와 그의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이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란츠1세와 오스트리아 여제(女帝)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인 앙투아네트는 14세에 시집 와 38세인 1793년 10월16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혁명군에 의해 사치 방탕 음란의 대명사로 낙인 찍혀 대중에겐 적의와 분노의 표적이었다. 굶주리는 백성을 향해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요”라고 했다는 그의 말은 혁명 당위성을 알리는 것으로 선전됐다.

혁명에는 과장과 왜곡도 있게 마련이다. 앙투아네트의 ‘빵과 케이크’ 발언은 왕정에 대한 분노를 돋우기 위한 혁명군의 조작이란 게 지금까지의 정설이다. 그런 말이 등장한 것은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론》에서였다. 앙투아네트가 불과 10세 때였다. 그는 실제로 소박했으며 백성을 배려했다는 주장도 있다. 프랑스와 패권을 다퉜던 오스트리아 공주라는 이유로 갖가지 악행의 장본인으로 둔갑했다는 얘기도 있다. 시민들의 바스티유 습격도 무기를 탈취하기 위한 것이고, 당시 그곳엔 정치범이 없었다는 설도 꾸준히 제기된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2006년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런 내용을 담아 프랑스가 감추고 싶었던 치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은 프랑스 혁명 기간을 ‘혁명의 이름으로 욕망(권력)을 탐한 시대’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는 《군중심리》에서 “자유 평등 박애는 자제력을 잃은 군중의 진짜 동기들, 즉 상류계급에 대한 질투와 탐욕 증오를 정당화하는 구실로 전락했다”고 평했다. ‘승자의 기록’인 역사의 이면에는 잊혀지고 감춰진 진실이 곳곳에 있는 법이다. 우리나라의 ‘광우병 촛불시위’ 등 광기의 역사엔 늘 대중의 분노를 이끌어내기 위해 선전선동이 빠지지 않는 것은 역사의 도돌이표인 듯하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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