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방송이 "현대車 품질 형편 없다" 조롱하자
'10년·10만 마일' 보증 승부수…작년 품질 1위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kim.chungho@gmail.com
■기억해 주세요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현대자동차는 미국에서 품질이 나쁜 차로 알려져 있었다. 미국의 까다로운 소비자를 만족시키려면 품질을 끌어 올려야 했다. 정몽구 회장은 품질 혁신에 사활을 걸었고 그 결과 세계 5위의 자동차 회사로 성장했다.
1998년 현대자동차는 현대그룹에서 분리됐다. 정몽구가 새로운 현대자동차그룹의 회장이 됐지만 기쁨에 취할 수만은 없었다. 현대자동차의 품질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신차 품질조사를 하면 현대자동차가 단골 꼴찌였다. 코미디의 소재가 될 정도로 품질이 형편없었다.
‘현대차가 80마일 이상 달릴 수 있나’
미국의 인기 토크쇼 데이비드 레터맨 쇼의 진행자 데이비드 레터맨은 다음과 같은 말로 현대차를 조롱했다. “현대자동차를 80마일(128㎞) 이상 달리게 하는 방법은 절벽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것뿐이다.”
이러다가는 미국 시장을 포기해야 할 판이었다. 회장이 되자마자 전 직원에게 품질 경영을 선언했다. 품질을 경영의 최우선으로 삼았다. ‘라인스톱제’를 도입했다. 불량이 발견되면 생산라인 전체를 멈추게 하는 제도였다. ‘오피러스’의 소음을 잡기 위해 수출품 선적을 40일간 미루기까지 했다.
정몽구는 자동차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맡은 첫 일이 전국을 돌며 고장 난 현대차를 고쳐주는 것이었다. 나중에 사장직을 맡았던 것도 현대자동차서비스였다. 자동차가 왜 고장이 나는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를 현장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그 경험을 가지고 그는 생산현장을 누볐다. 사장과 고위 임원들에게도 현장으로 내려가서 노동자들과 호흡을 같이하게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큰 모험을 강행했다. 미국 시장에서 현대자동차의 무상보증기간을 10년 10만 마일로 늘린 것이다. 그전까지는 3년 5만 마일이었다. 사람들은 현대차가 3년도 못 넘기고 망할 거라고 수군거렸다. 막대한 수리비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봤다.
모듈화로 품질 향상
하지만 세간의 예상은 빗나갔다. 수리비가 아니라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품질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미국 제이디파워(J D Power)사의 ‘신차품질조사(IQS)’에서 현대차는 2000년 37개 사 중 34위였지만 2004년 38개 사 중 7위, 2006년 3위로 뛰어오른다. 2016년에는 포르쉐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돌이켜보면 10년 10만 마일 무상보증은 배수의 진이었다. 1999년 당시의 품질로는 망하는 선택이었다. 망하지 않으려면 수리비가 들지 않도록 품질을 높여야만 했다. 그리고 그 작전이 성공했다.
모듈화도 품질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자동차 생산은 2만~3만 개의 부품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이 부품들을 완성차 업체가 받아서 직접 조립했다. 모듈화는 개별 부품을 직접 납품받는 대신 섀시, 운전석, 도어 등 6~7개의 덩어리(모듈)로 조립해서 납품하게 하는 방식이다. 완성차업체는 그 모듈만 조립하면 된다. 이 방식 덕분에 품질은 높이고 원가는 낮출 수 있었다. 원래는 유럽의 자동차 기업들이 1990년대 시작했지만 이제는 현대·기아차가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기로에 선 자동차 산업 경쟁력
현대·기아차의 품질이 향상되고 해외 수요 기반이 탄탄해지자 글로벌 생산 체제를 갖추기 시작했다. 2005년 미국 앨라배마에 이어 러시아, 브라질, 멕시코, 중국 등에 생산기지를 구축했다. 현대·기아차는 연산 800만 대(2016년) 규모, 세계 5위의 자동차 기업이 됐다. 지난 20년간 가장 성공적으로 성장을 이룬 자동차 메이커가 현대자동차다. 자동차의 성공을 기반으로 해서 현대제철을 세웠고 법정관리 중이던 현대건설도 인수했다.
정몽구 회장이 현대자동차 회장이 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현대자동차가 망할까봐 걱정했다. 정 회장은 그럴 정도로 어눌해 보였다. 그런 그가 세계가 놀라는 성공을 이뤄냈다. 경영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임을 입증한 셈이다.
이제 자동차산업은 커다란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우리가 아는 자동차의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다. 구글은 자율주행자동차를 내놓았고 테슬라는 전기차로 세상을 매혹시키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기적을 일으켜온 정 회장은 지금 어떤 모험을 계획하고 있을까.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kim.chung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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