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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라면] '차라리'와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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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 < 시인 >


후배 하나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 와인도 따라왔다. 우리는 “좋은 저녁이야”를 연발하며 분위기 좋게 시작하고 있었다. 후배가 두 잔의 와인을 마시면서 이야기가 길어지더니 벌떡 일어나고 싶을 정도로 지루하게 엇나가기 시작했다. 좋은 시간은 좋은 대화가 핵심이다. 좋은 시간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말을 잇는 연결고리에서 몇 차례 “차라리”에서 한숨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차라리 안 하고 말지” “차라리 돌아서고 말지” “차라리 헤어지고 말지” 등 인내를 시험하듯 차라리라는 말로 날 피곤하게 만들었다. 밥 먹다가 일어서지도 못하고 나는 최대한의 인내심을 가지고 웃으며 말했다.

“‘차라리’를 ‘그래도’로 바꿔봐. 네 기분이 변하게 되고 생각도 행동도 지금 이야기도 조금 변화되지 않겠니. 네가 말하는 차라리강에 나도 함께 휩쓸려가는 것 같아 몸을 움츠리게 되는데…. 너 힘든 거 알지만 차라리(里)보다 그래도(島)가 그래도 좀 경치가 좋을 것 같지 않니?” 후배가 너무 엉뚱했는지 강의하냐고 대뜸 얼굴을 치켜들다가 이내 얼굴을 숙였다. “언니 미안해요 요즘 제가 좀 너무 우울해서요.”

후배가 말하는 ‘차라리’를 너무 잘 알고 너무나 많이 건너온 강이기에 나는 밥 먹다가 신경이 곤두섰던 것이다. 그러나 더 많이 건너온 강은 ‘그래도’이다. 내가 수천 번도 넘은 강이고 또한 누구나 건너오고 건너가고 있는 강이다. 김승희 시인이 ‘그래도라는 섬에 살고싶다’라는 시에서 그래도의 의미를 너무 잘 그리지 않았는가.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는 사람들…

나는 늘 뭐뭐 때문에라고 소리치면서 그래서 차라리를 연발하면서 결국 내가 생의 가장 빛나는 도시를 찾은 건 ‘그래도’라는 공간이었다. 차라리는 “뭐뭐 때문이고” 그래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거대한 출발이며 발견인 것이다.

언제나 출발이며 희망의 공간인 것이다. 생은 높이뛰기였고 장애물 넘어서기이며 도전의 이름으로 땅을 넓히는 넓이뛰기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후배에게 다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 후배의 도발적인 말과 행동 밑에 깔려 있는 불쌍한 욕구를 내가 읽어내지 못한 것 같아 선배로서 짜증을 낸 것이니 미안하다고 한 것이다.

밥상 앞에서 우리는 침묵했고, 우린 똑같이 스스로의 문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어떤 문제점을 스스로 달래는 선수들이 되어 있어서 절반 남은 밥은 웃으며 먹을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정신이 약해져 가는 것인가, 젊은 시절의 고통들이 불끈 일어서서 날 숨 막히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래도 발끝에 힘을 주면서 스스로 서려고 노력하고 있다.

조금 둔감하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 무신경이 아니라 남에게 질책을 듣거나 대화가 되지 않아 좌절할 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정신의 복원력으로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힘(와타나베 준이치)을 알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며 위안이며 자신을 지키는 힘이 될 것이기에 말이다.

신달자 <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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