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이데아'는 현실에 없는 것" 비판
"사물의 본질은 현실 세계 안에 존재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 마케도니아의 스타게이라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마케도니아 왕실의 유명한 의사였고, 어머니 또한 의사 집안 출신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하는 일을 지켜보았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생물학적 사고를 소중히 여긴 것은 극히 당연한 일. 아닌 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에 토대를 두고 모든 것을 성장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철학적인 입장을 체계화하게 되었던 것이다.
생물학적 관점으로 철학
18세 때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로 가서 플라톤이 설립한 당시 ‘명문 대학’이라 할 수 있는 아카데미에 들어가 최고의 교육을 받게 된다. “기하학에 대한 지식이 없는 자는 이 문에 들어서지 못한다.” 이 말은 아카데미 정문에 쓰여진 문구이다. 여기에는 아카데미를 세운 플라톤의 생각이 집약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플라톤은 아카데미에서 그의 제자들이 기하학을 통하여 ‘이데아’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기를 원했던 것이다. 20년 동안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으로부터 철학적으로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아카데미의 정신’이라는 칭찬을 받을 정도로 학문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플라톤이 세상을 떠난 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과 철학적 견해가 다른 아카데미와 점점 멀어지게 된다.
흔히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차이를 기하학과 생물학의 차이와 같다고 말한다. 플라톤이 기하학의 관점을 확대하여 영원한 이데아의 세계를 제시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적인 관점으로 현실 세계에서 불변하는 변화의 원리를 찾아내려 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세계를 각각 다른 관점에서 설명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간의 충돌은 필연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실이 진짜다···형상과 질료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그의 스승인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은 위대하다. 그러나 진리는 더욱 위대하다”고 외치며 철학의 본질인 비판 정신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또 하나의 철학 체계를 구축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스승 플라톤의 철학을 비판하는 주요 논점은 ‘이데아론’에 관한 것이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정한 지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사물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플라톤과 입장을 같이한다. 그러나 그 공통성에 ‘이데아’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데아가 ‘본질’이고, 눈에 보이는 사물은 그것의 ‘그림자’라고 하는 식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와 같은 비유적 표현으로는 구체적인 사물과 이데아의 관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기하학에서 다루는 대상은 현실계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것이어서, 기하학은 현실 세계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데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이데아계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사물의 본질은 현실계의 사물 내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형상’과 ‘질료’라는 말로 설명한다. 여기서 형상이란 플라톤의 이데아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어떤 대상이 갖는 형태를 의미한다. 질료란 그 대상이 만들어진 재료를 의미한다.
라파엘로의 그림과 손가락 방향
예컨대, 아름다운 꽃의 ‘형상’(플라톤의 용어로는 이데아)은 천상의 이데아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다. 꽃의 ‘형상’은 싹 안에 함유되어 있던 것이고, 싹의 ‘형상’은 씨 안에 함유되어 있던 것이다. 결국 꽃의 ‘형상’이란 씨 안에서 장래 실현되어야 할 ‘형상’으로서 내재되어 있는 것이지 결코 외부로부터 첨가된 것이 아니다. 결국 씨 속에는 ‘가능태’로서 꽃의 ‘형상’이 내재되어 있고 그것이 발아, 성장의 과정을 거쳐 개화되었을 때 ‘현실태’로서 형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라면 굳이 초월적인 이데아를 제시하지 않아도 현실 세계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만든 천상의 이데아를 지상으로 끌어내리고 생물학에 토대를 둔 자신의 형이상학을 완성한 것이다. 플라톤이 현실보다는 이데아의 세계에서 본질을 추구한 이상주의라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 속에서 본질을 찾고자 한 현실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라는 그림 속에서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플라톤과 땅을 가리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습은 바로 그들의 철학이 갖고 있는 이러한 차이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 아닐까. 서울국제고 교사
생각해봅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생물학을 자연스럽게 접했다. 생물학을 익히면서 그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해 비판적인 철학체계를 갖게 되었다.
‘하늘과 땅’은 두 철학자의 차이를 보여주는 상징어로 통한다. 이유를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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