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획자문위원회 업무보고
공정위, '징벌적 손배제' 대상 확대 추진
납품단가 조정 사유에 '최저임금 인상' 포함
유통업계 "소송 남발로 경영활동 위축 우려"
[ 황정수 / 안재광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라는 칼을 꺼내든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한 ‘갑질 근절’ 의지 때문으로 분석된다. 문 대통령의 공약집을 보면 경제민주화 1번 공약은 ‘재벌개혁’이 아니라 ‘갑질 근절’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불공정한 갑질과 솜방망이 처벌을 끝내겠다”고 수차례 선언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규제 칼날 앞에 서게 된 대형마트 백화점은 ‘초비상’이다. 소비자들로부터 ‘갑질’의 대명사로 꼽혀 ‘마녀사냥’을 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규제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데까지는 안 갔으면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손해액의 최대 3배 배상해야
공정위는 26일 백화점 대형마트의 갑질을 근절하기 위해 대규모유통업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겠다고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보고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갑질 근절’을 위해 공정위가 꺼내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로 꼽힌다. 본사의 갑질로 손해를 본 납품업체가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앞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가맹사업법 대리점법 하도급법 등에 도입될 때도 ‘잘못하면 기업이 망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극심한 진통이 있었다.
공정위 내부에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그럼에도 공정위가 전격 도입을 선언한 건 유통업계의 ‘불공정 관행’이 사라지고 있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공정위가 부과하는 과징금이 피해자의 손해를 배상하는 데 이용되지 못하고 국고로 환수돼 실질적인 피해 구제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지적도 영향을 줬다.
공정위 관계자는 “경제 여건과 기업 경영 환경 등을 감안해 대외 공표는 안 했지만 내부적으론 오래전부터 도입을 검토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소송 대란 가능성 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면 대형마트나 백화점은 ‘소송 대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유통 현장에서 매년 유통 본사와 납품·입점 업체 간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판촉 행사, 매장 인테리어 등의 ‘비용’과 관련한 다툼이나 매장 위치 변동 등 영업과 관련된 갈등이 대부분이다.
보통은 공정위 조사나 공정거래조정원 조정을 통해 문제가 해결된다.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면 납품·입점 업체들은 3배 보상을 받기 위해 대거 소송에 나설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유통 본사는 공정위 조사 이후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이란 ‘이중고’에 시달릴 수 있다.
국내에선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역사가 짧아 소송 사례가 흔치 않다. 하지만 해외에선 대규모 소송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법원으로부터 난소암 피해자 두 명에게 각각 550억원, 6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받은 생활용품업체 존슨앤드존슨이 대표적이다. 베이비파우더 사용 시 난소암 피해 가능성을 경고하지 않은 결과다. 지금도 존슨앤드존슨은 난소암 피해자와 관련된 1200여 개 집단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경영활동 위축 우려
유통업계는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방침에 긴장하고 있다. 이미 대규모유통업법에 손해배상 조항이 있는데 징벌적 손해배상제까지 도입하는 건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대규모유통업법에 실질적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을 하도록 규정돼 있다”며 “하지만 위반사례는 별로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 공정위와 동반성장위원회의 모니터링 등을 통해 많은 불공정 관행이 개선됐다”고 덧붙였다.
유통업계에 대한 ‘마녀사냥’ 우려도 나온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사회적 배경이나 법개정 취지는 공감하지만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황정수/안재광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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