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자산 10조 안 넘는 중견기업, 공시대상 이유로 대기업 '둔갑'
공정거래법엔 관련 조항 없어
엉터리 자료 낸 기업집단과 '국'으로 승격되며 대기업 조사
벌써부터 재량권 남용 우려
[ 황정수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9일 예정에 없던 보도 참고자료를 냈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인 ‘지주사 규제 강화’의 영향을 분석한 자료였다. 지주사의 상장 자회사 최소 지분율을 10%포인트 올릴 경우(20%→30%) 총 11개 지주사만 영향을 받고, 이 중 6곳이 대기업집단 소속이라고 강조했다.
상장 자회사 규제 강화 시 정부가 타깃으로 정한 대기업집단은 2곳만 영향을 받고 나머지는 중견·중소 지주사라서 ‘애꿎은 중견·중소기업만 잡는다’고 지적한 한국경제신문의 보도(5월15일자 A1·8면, 5월19일자 A4면)를 정면 반박하는 내용이다.
지난 대선 때 더불어민주당의 ‘지주사 규제’ 공약에 함구로 일관했던 공정위가 문 대통령 취임 후 공약을 적극 옹호하고 나선 건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럼에도 이해하기 힘든 건 공정위의 해명이 오류투성이라는 점이다. ‘준사법기관’,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의 해명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다.
우선 ‘규제 적용 대상 대기업집단 지주사가 6곳’이라는 공정위의 셈법부터 틀렸다. 그간 언론뿐 아니라 공정위도 매년 공정위가 발표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하 상출집단)을 대기업집단이라고 불렀다. 지정 기준은 작년 9월 말 ‘자산총액 5조원 이상’에서 ‘10조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됐다. 한국경제신문도 이 기준에 맞춰 지주사 규제 강화 시 대상이 되는 대기업집단이 2곳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대기업집단에 ‘자산총액 5조원 이상 10조원 미만’ 4곳을 더했다. 이유를 묻자 담당과장은 “총 자산 5조~10조원 그룹은 공시 대상 기업집단으로 지정되기 때문에 대기업”이란 논리를 굽히지 않았다.
현행법을 무시한 주장이다. 중견기업특별법과 중소기업법을 보면 ‘중견기업’은 중소기업이 아니면서 공정위가 지정한 ‘상출집단이 아닌 곳’이라고 정의된다. 공정위가 대기업집단이라고 우기는 지주사 4곳은 상출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명백한 ‘중견기업’이다. 또 ‘공시 대상 기업집단’ 지정은 시행되지도 않았다. 공정거래법에는 ‘공시집단이 대기업집단’이란 조항도 없다.
5곳에 불과하다는 규제 강화 대상 중소·중견 지주사 수도 의도적인 ‘축소 계산’의 결과다. 공정위는 규제 강화 대상 지주사를 계산할 때 자산 5000억원 미만 15곳은 빼버렸다. 오는 7월부터 원하면 지주사 지위를 반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해당 지주사 관계자는 “지주사 지위를 반납하면 세제 혜택 등 지주사의 다양한 이점을 포기해야 한다”며 “원하면 빠질 수 있어서 규제 강화 대상이 아니라는 논리는 규제 기관의 오만한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공정위의 지주사 숫자 계산도 틀렸다. 공정위가 지주사라고 표기한 한불화장품은 이달 초 지분 매각 결과 현재 지주사가 아니다.
이런 자료를 낸 ‘기업집단과’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18일 ‘기업집단국’으로 승격시켜 대기업 조사를 전담시키겠다고 말한 곳이다. 김 후보자는 공정거래법 적용엔 ‘재량권’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데, 4대 그룹엔 더욱 엄격하게 적용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기업집단과가 나중에 대기업집단을 조사할 때도 거짓과 허구 논리를 근거로 재량권을 남용할까봐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황정수 경제부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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