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하이닉스·서울대·KAIST·ETRI
'뉴로모픽 반도체' 프로젝트
1만6000개 CPU 역할을 손톱 크기 칩 하나로 처리
상용화까지 10년 예상…성공 땐 '제2 반도체 혁명'
[ 노경목 기자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서울대, KAIST,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이 뉴로모픽(neuromorphic·뇌 신경 모방) 반도체 개발을 위해 힘을 합친다. 뉴로모픽 반도체는 기존 반도체 대비 1억분의 1에 불과한 초저전력으로 딥러닝 등 인공지능(AI)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반도체다. 상용화까지는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일단 시장에 나오면 메모리와 비메모리(시스템LSI) 간의 벽을 무너뜨려 시장 판도를 크게 바꿔놓을 전망이다.
◆왜 초저전력인가
6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과학 정책 기구들이 차기 정부에 제안할 연구과제로 선정한 ‘초저전력 반도체 인공지능’ 프로젝트에 임원급 엔지니어를 한 명씩 파견하기로 했다. 차기 정권 출범 시점까지 해당 프로젝트 기획안을 완성할 예정이다. 한 관계자는 “한국 반도체의 우위를 이어갈 핵심 기술이라고 판단해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는 종류별로 저장(메모리)과 연산 기능(CPU·중앙처리장치)을 수행한다. 뉴로모픽 반도체는 사람의 신경세포처럼 저장과 연산은 물론 인식, 패턴 분석까지 한다. 사람이 기억하듯 신호를 주고받는 데 따른 잔상으로 데이터를 저장한다. 패턴을 반복해 인지하는 것만으로 이미지와 소리를 저장할 수도 있다. 구글이 2012년 고양이와 다른 동물 사진을 구분할 수 있는 AI를 개발하는 데 1만6000개의 CPU를 동원했지만 뉴로모픽 반도체가 개발되면 손톱 크기의 칩 하나로도 식별이 가능해진다.
프로젝트 이름에 ‘초저전력’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에서 알 수 있듯 뉴로모픽 반도체의 핵심 기능은 전력 소모를 대폭 줄이는 것이다. 전하 이동을 크게 줄여 전력 소모를 현재의 1억분의 1 수준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지금 속도로 반도체 사용량이 늘어나면 2040년에는 화력발전소 1억개가 추가로 지어져야 필요한 전력을 댈 수 있다”며 “소비전력을 획기적으로 낮추지 못하면 AI 관련 기술을 활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난도 높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일찍부터 관련 기술에 관심을 보였다. 삼성전자는 뉴로모픽 반도체 설계를 위한 독자 개발 역량을 쌓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작년 10월 미국 스탠퍼드대와 협약을 맺고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산업계의 연구만으로는 힘에 부친다는 지적이 일찍부터 제기돼 왔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공정 개선과 바로 양산 가능한 제품에 자원을 집중하다 보니 10년 후에나 빛을 볼 뉴로모픽 반도체 개발에는 소홀히 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IBM이 막대한 연구비를 투자한 뉴로모픽 반도체 ‘트루노스’는 기술적 한계에 부딪혀 최근 개발이 중단됐다. 반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뉴로모픽 반도체 일종인 ‘아이리스’를 내놨고, 중국 칭화대도 ‘텐즈’를 개발하고 있는 등 관련 연구는 학계에서 계속 이뤄지고 있다.
반도체업계에서는 뉴로모픽 반도체 연구가 미래 반도체 개발로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학계 관계자는 “뉴로모픽 반도체가 개발되면 한국이 세계 1위인 메모리 반도체 기술을 활용해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하드웨어 AI에서 앞서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LSI 사이의 장벽도 허물어뜨려 세계 반도체 판도까지 바꿀 것”으로 전망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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