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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갑영 칼럼] 성장을 담론으로 삼는 문화가 정착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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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제문제는 저성장에서부터 시작돼
그런데도 분배·형평의 공약으로 눈가림
경직된 제도 혁파해 새 성장의 불씨 지펴야

정갑영 < FROM100 대표 전 연세대 총장 >



최근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연 2%대의 저성장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처리 등에 따른 파장도 만만치 않다. 기업 총수들은 출국금지로 몇 달째 발이 묶여 있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연이은 핵도발로 한반도의 긴장은 높아만 가고 있다. 우리와 달리 미국과 일본 등은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 성장의 모멘텀을 맞고 있다. 각국에서 신기술을 응용하는 신사업모델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지만 우리는 새로운 산업은커녕 성장의 담론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 사회가 성장은 분배를 악화시키고 불균형을 초래해 부익부 빈익빈을 가져오는 적폐의 대상이라고 여기게 된 것일까? 어느 대선주자의 공약에서도 미래의 성장전략은 찾아볼 수 없다. 과거 청산이나 선심성 공약에 연연할 뿐 표밭을 넘어 미래의 먹거리를 개척하자는 선도적인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이 바뀌어도 나아질 게 없을 것 같다는 자조(自嘲)의 한숨이 적지 않다. 한국 경제는 이제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는 것일까?

사실 모든 경제문제는 저성장에서부터 시작된다. 가장 심각한 현안인 가계부채와 청년실업도 성장 없이 어떻게 해결될 수 있겠는가. 근로시간 단축도 고용 창출의 정공법이 아니다. 부자과세를 아무리 강화해도 소외계층의 후생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가계부채 역시 일자리가 창출돼야 건전하게 해결될 수 있다. 분배도, 재정의 건전성도 모두 성장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성장은 애써 외면한 채 지속 불가능한 분배와 형평의 공약으로만 눈가림하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오히려 한국 경제는 과감한 혁신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제도적 역량을 확충하고 미래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해야 한다. 무엇보다 분배와 형평의 논리, 낡은 관행이나 기득권에 묶여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경직된 제도를 과감히 혁신해나가야 한다.

성장의 핵심요인은 결국 혁신과 유연성이다. 노동과 교육, 투자에 이르기까지 유연성과 자율성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만 새로운 성장의 불씨를 지필 수 있다. 구조조정도 상시화해 경쟁력 없는 기업이 쉽게 문을 닫게 해야 신생기업의 탄생도 활발해진다.

물론 성장을 위한 혁신은 고통을 수반한다. 따라서 표를 염두에 둔 후보들은 미래를 위한 고통을 감내하자고 외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철새교수’라고 비난받으며 각 캠프에 포진해 있는 그 많은 폴리페서는 뭘 하고 있는가. 더 이상 후보의 표밭갈이에 이용만 당하지 말고, 표심을 거스르는 고언과 혁신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전문가의 사명 아니겠는가.

경제의 정치화 현상도 성장동력을 훼손시키고 있다. 현안마다 정치가 경제논리를 압도하는 경제의 정치화 현상이 만연해 있다. 이미 국회와 언론은 무소불위가 됐고 표심을 거스르는 소수의 바른 혁신은 빛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경제에는 공짜 점심이 없다. 흔히 회자되는 남미나 그리스의 비극이 모두 경제의 정치화에서 비롯된 포퓰리즘의 산물이다. 정치가 나라와 국민만 생각한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그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불과한 것이 우리의 현실 아닌가.

한국이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세기적 격변기를 넘어 한 단계 도약하려면 모든 분야에서 성장을 담론으로 삼는 새로운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굳이 고도성장을 논하지 않아도 된다. 과거 청산과 비방, 업적 되돌리기 등에 집착하는 냉소적 문화에서 탈피해 한 발짝이라도 더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그래야 조직도 발전하고 경제도 성장하며 나라도 선진화된다.

경제사학자 조엘 모키르는 산업혁명이 유럽에서 먼저 시작된 것은 혁신을 존중하는 성장의 문화 때문이었고 노벨 경제학자 로버트 실러도 발전의 원동력은 결국 제도와 문화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지나간 성장의 추억은 망각을 강요당하고 혁신을 지향하는 성장의 문화는 경직된 제도와 정치논리로 발도 붙이지 못하고 있다.

정갑영 < FROM100 대표 전 연세대 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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