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경영학 <45> 창조적 혁신과 모방적 혁신
한국 기업의 발전단계
60~70년대 단순모방의 시대
80년대 모방형 혁신역량 갖춰
90년대 이후 일류 상품 도약
기업 '도약적 혁신' 과제
창의적 인재 충분치 않지만
명확한 메시지로 교육 혁신
정부, 교육 자율권 확대 필요
혁신(革新)은 새로워지는 것이다. 새로워지기 위한 아이디어를 남으로부터 얻었는지 아니면 스스로 생각해낸 것인지에 따라서 모방적 혁신과 창조적 혁신으로 나눌 수 있다. ‘벤치마킹’으로도 불리는 모방적 혁신은 쉽고 비용도 적게 들며 이미 검증됐으므로 실행상의 위험도 작다. 창조적 혁신은 아이디어를 찾아내거나 개발하기가 힘들고 기술개발 등 많은 투자가 요구되며 실행 시 예상치 못한 위험도 따른다. 최근 갤럭시노트7 사태는 창조적 혁신의 리스크가 매우 클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자연현상에 입각한 기술 분야의 모방적 혁신은 그대로 모방을 하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별로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개입되는 경영 분야의 혁신은 의식, 관행, 역량, 변화에의 저항감 등을 고려하지 못하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에는 양쯔강 남쪽의 귤나무를 북쪽에 옮겨 심었더니 탱자 열매가 열렸다는 남귤북지(南橘北枳)란 사자성어가 있는데 이는 어떤 제도를 모방적으로 이식하기 위해서는 풍토가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모방을 하더라도 자신의 역량에 맞게 모방하지 않으면 실패하기 쉽다는 의미다. 조삼모사(朝三暮四)는 심지어 같은 것조차도 어떻게 소통하고 설득하느냐에 따라 수용성에서 성패가 갈릴 수 있다는 교훈이 된다. 모방도 어떻게 제대로 잘하느냐가 창조적 혁신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가 된다.
경제가 발전한다는 것은 질적이고 양적인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개발도상국들의 경제성장률이 매우 높은 것은 모방적 혁신 단계에 있기 때문이며, 선진국들의 성장률이 낮은 것은 창조적 혁신 단계에 있기 때문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도 대체적으로 모방기라고 볼 수 있는 1960~1980년대에는 고도성장기를 맞이했다가 창조적 혁신기로 이전하는 1990년대 이후에는 성장이 둔화되기 시작했다.
1960~1970년대는 기술이전에 의존한 단순모방의 시대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혁신역량 수준으로 이 시기 기업들을 평가한다면 3류에 해당할 것이다. 1970년대 말의 중화학공업 불황은 단순모방의 한계를 맞아 자체적인 기술개발, 품질 향상, 생산성 향상 역량의 부족에서 생긴 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초반에 우리가 고전하다가 중반으로 오며 경제가 좋아진 것은 우리 기업들이 외국 모델을 도입해 단순생산만 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외국 제품의 모방에 자신의 혁신 노력을 더해 마그네틱 테이프, 컬러TV, 전자레인지, 메모리 반도체, 자동차 등에서 자립형 모델을 자체 개발하고 많은 분야에서 품질 향상과 생산성 향상을 이뤄낸 개량형 모방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 단계는 어느 정도의 모방형 혁신역량을 갖춘 2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는 값싼 중국 제품의 도전으로 모방형 제품을 비교적 싼 가격에 팔던 경쟁구조의 한계를 맞아 창조적 혁신에 기반한 세계 일류 상품으로의 도약이 필요하게 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에 살아남아 2000년대 우리 경제를 이끈 주요 기업들은 창조적 혁신에 성공, 자기 제품을 세계 일류 상품 반열에 올려놓은 기업들이라고 볼 수 있다. 자동차, 가전, 조선, 철강, 석유화학 같은 현재 우리나라 주력산업은 비교적 성숙산업으로서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창의적 혁신보다는 자그마한 아이디어가 축적돼 이뤄진 개량형 혁신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다. 그런데 이 분야들은 빠르게 단순모방 단계에서 벗어나 혁신능력을 축적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한편 오늘날 태풍의 눈인 4차 산업혁명은 획기적이고 극적인 창조적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런 도약적 혁신에 익숙하지도 않고 역량도 부족하며 관련 인재 공급을 위한 국가적 교육 인프라도 부족하다. 우리의 주입식 교육과 비차별적 대중교육 및 집단주의적 사고는 창의성 발휘에 적합하지 않다. 반면에 창조적 혁신을 선도하는 미국은 다양한 출신과 문화, 창의적 교육의 중시, 개인의 개성 중시, 최강의 대학 연구경쟁력, 혁신에 대한 보상 등 도약적 혁신을 격려하는 인프라가 세계에서 가장 잘 갖춰져 있는 국가다.
그러나 기존의 우위산업에서 중국 기업들의 도전에 직면하고 새로운 시대적 혁신 흐름에 대응해야 하는 우리 기업들은 도약적 혁신을 강화해야 한다는 당면과제를 안고 있다. 즉 전통산업의 경쟁력을 지켜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첨단산업이나 신생산업이 취약하다는 약점을 보완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단시간에 도약적 혁신이 강한 기업으로 환골탈태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혁신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창의성 인재 육성 가치사슬을 강화해야 하는데, 이것은 기업들의 정책 변화와 정부 지원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할 것이다. 혁신의 담당 주체인 기업은 미래를 위해 창의적 인재 채용을 확대하는 인사정책을 취해야 한다. 비록 현재 창의적 인재의 공급이 충분하지 않겠지만 기업이 창의적 인재의 채용을 늘린다는 메시지가 명확하다면 창의적 교육을 강화하는 대학이 늘어날 것이다. 대학이 창의적 소양을 지닌 신입생 선발을 늘린다면 그에 따라서 창의성 교육을 중시하는 초·중·고교나 학원도 늘어날 것이다. 시장에서 수요가 없다면 정부 주도의 공급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최종 수요자인 기업이 창의성 인재 양성 인프라 구축을 선도해야 한다. 현명한 소비자가 경쟁력 있는 공급자를 키우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대학과 초·중고의 입시 및 교과과정 운영의 자율권을 확대해주는 정책을 취하면 된다.
새로운 업종이나 상품의 혁신을 주도하는 기업들은 기존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기업들이 아니라 벤처기업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벤처기업의 신기술을 싼값에 얻기 위해 핵심 인재를 스카우트하거나 기술 아이디어만 빼내는 등 벤처 생태계가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망가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주주자본주의에 충실한 미국이 단기 경영에 치우치다가 경쟁력을 잃어버렸다는 반성이 있었다. 우리나라도 오너가 직접 관여한 큰 투자결정에는 장기적 관점의 의사결정을 통해 성공한 사례들이 있으나, 단기 업적에 치중하는 실무적 업무 수준에서는 단기 경영에 급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단기 업적 지향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은 장기적 시야를 갖춘 오너들의 상생적 인수합병(M&A) 정책일 것이다.
■ 인류의 보편적 발전 원리인 혁신과 확산
일개 기업도 그렇지만 국가나 인류도 창조적 혁신과 모방에 의해 발전해왔다. 기술의 혁신과 확산은 기업, 국가, 인류의 보편적 발전 원리인 것이다.
창조적 혁신을 선도하는 국가는 앞서가고 모방하는 국가는 그 뒤를 따라갈 뿐이다. 청동기, 철기, 농경기술, 산업혁명, 근대문명의 혁신과 확산 과정은 이를 잘 보여준다.
산업혁명이라는 혁신이 영국에서 일어난 뒤 각국은 이를 자국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고, 이런 노력이 국가의 발전과 경쟁력을 결정해왔다. 심지어는 앞선 국가가 뒤처진 지역의 현지인을 밀어내고 그 땅을 차지하면서 혁신이 확산됐는지, 아니면 뒤처진 지역의 사람들이 스스로 다른 지역의 선진 기술을 들여와 모방하는 과정에서 그 기술이 확산됐는지에 따라서도 지역 발전의 수준과 속도가 결정됐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고대 일본의 조몬족과 아메리카 인디언의 도태 사례는 혁신과 모방에서 늦으면 국가는 물론 민족의 생존도 위협받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또 면화씨를 도입한 문익점이나 화포를 모방한 최무선의 사례는 모방을 잘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정규석 < 강원대 경영회계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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