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현영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새벽 구속됐다. 삼성그룹이 충격에 빠진 가운데 국내 증시도 파랗게 질린 모습이다.
여의도 증권가(街)는 79년 만에 나온 삼성그룹 총수 첫 구속이란 '시장 변수'에 대해 속단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부회장의 구속을 시작으로 SK 롯데 CJ 포스코 등 '릴레이 수사'로 번질 경우를 가장 경계했다.
◆ 법원 "이재용, 구속 필요성이 인정된다"…삼성그룹株 하락 출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30억원대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범죄수익은닉·재산국외도피 등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한정석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판사는 이날 새벽 "새롭게 구성된 범죄 혐의 사실과 추가 수집된 증거 자료를 종합할 때 구속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재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룹 총수가 구속됐다는 소식에 국내 증시도 동요했다. 호텔신라 제일기획 삼성전기 등을 제외한 삼성그룹주(株) 대부분이 하락 출발했다.
삼성전자는 10시5분 현재 전날보다 0.79% 내린 188만6000원에 거래되고 있으며 삼성물산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각각 2.3%와 1.5%대 주가하락률을 나타내고 있다.
삼성증권(-1.35%) 삼성에스디에스(-1.16%) 삼성생명(-1.40%) 삼성카드(-0.72%) 삼성중공업(-0.94%) 등도 일제히 약세다. 반면 호텔신라(3%)와 제일기획(1.8%) 삼성전기(1%) 등은 소폭 상승 중이다.
코스피(KOSPI) 지수도 약세다. 삼성그룹주의 시가총액은 국내 전체 상장사 시가총액의 30%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 시장에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
같은 시간 코스피 지수는 전날 대비 0.09% 내린 2079.93을 기록 중이다. 개장 직후 한때 2072.57(-0.45%)까지 내려가 2070선을 위협받기도 했다.
◆ 여의도 증권가 "증시 영향, 속단할 수 없다"…릴레이 수사 '걱정'
여의도 증시전문가들은 법원의 구속 결정 이후 시장의 향방에 대해 "서둘러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며 말을 아꼈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우선 그룹의 총수 부재로 인해 굵직한 투자일정 등 중요한 의사결정이 지연될 수 있어 그룹 입장에선 분명히 부정적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총수가 구속됐는데 '아무일도 아니다'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다만 그는 "법원의 구속 결정이 '경영 공백'을 뛰어넘어 '경영 마비' 상태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자체적인 경영시스템으로 총수 부재의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구용욱 미래에셋대우 리서치센터장도 "이 부회장의 구속 이후 재판 결과 등에 따라 삼성그룹주의 주가 움직임이 좌우될 것"이라며 "그룹도 총수 부재에 대비해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겠지만 최정점의 '콘트롤 타워'가 흔들린 영향까지 전부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나아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차질은 물론 다른 대기업으로 번질 수 있는 '릴레이 수사'에 따른 경제부작용을 구 센터장은 우려했다. 그는 "삼성과 SK 롯데 CJ 등은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상당한 곳들인데 검찰의 수사가 진행될수록 기업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윤 센터장도 "이번 구속은 당초 시장의 예상을 벗어난 '변수'로 볼 수 있다"고 말한 뒤 "이러한 변수들이 발생할 경우 외국인들은 돈을 넣지 않는 경향이 많다"고 강조했다. 당분간 삼성전자가 주도하는 시장의 흐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박중제 메리츠종금증권 투자전략팀 총괄팀장 역시 삼성그룹주의 덩치에 주목했다. 그는 "삼성그룹주의 시가총액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에 '총수 구속'이란 불확실성이 단기적으로 조정(하락) 요인이 될 수 있다"면서 "다른 그룹으로 '릴레이 수사'가 진행될 경우 시장 내 불확실성은 더욱 짙어질 수 있다"라고 경계했다.
◆ "단기적인 영향일 뿐…차익실현 정도 예상돼" 의견도 팽팽
이와는 반대로 '단기적인 영향에 그칠 것'으로 보는 엇갈린 시각도 팽팽하다. 투자심리적으로 '마이너스 변수'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가능성 등은 오랜 수사로 시장에 이미 70~80% 정도 반영된 재료"라며 "그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온데 따른 충격은 분명히 있지만, 기존 주주들의 차익실현을 위한 '핑계거리' 수준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삼성전자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정치적인 악재를 감내할 수 있을 만큼 탄탄하다"고 이 부사장은 강조했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도 "국내 1등 그룹이 총수의 부재로 심각한 어려움에 빠지지 않는다"면서 "과거 사례를 돌아보더라도 총수의 부재가 주가에 특별한 영향을 준 적은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강현철 NH투자증권 투자전략부장은 "그룹 총수의 부재 시 주가가 더 좋았던 경험도 많다"며 "오히려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인해 향후 그룹 지배구조 개선 작업이 수월해 질 수도 있는데 그 동안 악화된 여론이 일부분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내다봤다.
정현영 한경닷컴 기자 jhy@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