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구 <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
몇 년 전 내가 사는 아파트의 난방이 중앙난방에서 개별난방으로 바뀌었다. 즉 이전에는 한 곳에 커다란 보일러를 놓고 아파트의 모든 주민이 그 보일러에서 나오는 온수로 난방을 했는데, 집마다 조그만 가스보일러를 달아 각자 알아서 난방을 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같은 양의 연료로 낼 수 있는 열은 당연히 큰 중앙난방 보일러가 작은 개별난방 보일러에 비해 높다. 따라서 처음에는 어째서 효율적인 중앙난방에서 개별난방으로 바꾸자고 하는지 의아해했다. 그러나 개별난방 이후 정말로 엄청나게 난방비가 줄었다. 왜일까. 밖에 나갈 때는 난방을 끄고, 날씨가 좀 따뜻하면 온도를 내리는 등 난방을 조절하면서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어차피 내가 켜고 끌 수 없는 중앙난방이므로 집에 아무도 없어도 난방이 돌아갔다. 과학적으로 아무리 효율적이라도 이것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더해지지 않으면 오히려 낭비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은 좋은 기회였고 이를 미리 내다보지 못한 경제학자로서 창피함도 느꼈던 사건이다.
그런데 이런 중앙난방과 개별난방의 차이를 보면서 언뜻 불안한 생각이 든 것이 바로 전기차 보급이다. 아직은 일반 차량보다 가격이 비싼 전기차에 정부가, 민간이 호의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은 전기차가 친환경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앙난방과 개별난방의 논리를 적용하면 일반 차량은 운전자가 시동을 걸고 있는 동안에만 연료가 소모되는 개별난방과 같지만 전기차의 동력인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는 내 전기차가 시동을 끄고 있는 때에도 계속 전기를 만드는 중앙난방과 같다. 발전소는 연료를 태울 때 효율이 좋지만 워낙 큰 규모여서 마음대로 끄고 켜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국의 전기자동차가 거리를 다닐 때는 발전소를 돌리다가 전기차들이 시동을 끄면 발전소도 전력 생산을 중단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중앙난방과 같은 발전소 상황이 얼마나 전력 낭비를 가지고 올지는 계산할 수 없지만, 주민이 외출해도 계속 돌아가는 중앙난방과 같은 낭비가 전기차를 사용함에 따라 발생할 가능성은 존재한다. 또 휘발유에는 높은 세금이 부과되지만 우리의 전기요금은 아주 낮은 수준인데, 이는 전기차 운전자들이 휘발유를 사용할 때보다 연료비 부담 없이 더 오래 운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전기차 때문에 전기요금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전기차가 많이 보급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과연 전기차가 친환경적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한순구 <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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