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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수의 시사토크] 돈 낸 기업이야 무슨 죄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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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수 경제교육연구소장 mhs@hankyung.com


1993년으로 기억한다. 마침 옛 기아산업 농구단이 농구대잔치를 5연패한 직후였다. 한자리에서 당시 김선홍 기아산업 회장이 1986년 농구단을 창단하게 된 일화를 들려줬다.

발단은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전 대통령은 30대 그룹 회장들과의 간담회 중에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다들 아시는 대로 본인이 스포츠를 좋아하는데, 겨울에는 스포츠가 없어 심심하다. (김 회장을 바라보며) 기아는 스포츠단이 없다는데 하나 만들어 보시죠?” 김 회장은 자리가 자리인지라 “네, 생각해보겠습니다”고 말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 청와대 모 비서관이 전화를 걸어와 “김 회장님이 스포츠단을 만든다고 하셨다면서요? 어떤 종목인가요?”라고 물어왔다고 한다. 김 회장은 ‘아차’ 싶었지만 이미 발을 뺄 수 없다고 판단해 고심 끝에 농구를 택했다고 했다. 선수가 적은 만큼 투자를 가장 적게 할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한국 기업이 많은 돈 내는 이유

누구도 창단이 자발적이었다고 보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강요받았다고 단정하기도 모호하다. 이런 대화는 으레 편한 대로 알아듣기 마련이라는 것도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고 뿌리치기도 어려운 법이다. 더구나 서슬 퍼렇던 5공 정권이 아니던가.

유독 한국 기업이 많은 돈을 쓰고 내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 5공 정권만이 아니다. 역대 정부에서 모두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대북사업, 동반성장기금, 미소금융 등이 다 그렇다. 박근혜 정부도 청년희망펀드, 창조경제혁신센터 등 예외가 아니었다. 정권이 바뀌면 명목만 달라질 뿐 기업이 돈을 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이 정도가 아니다. 지난해 기업들이 낸 소위 준조세가 무려 20조원이다. 시민단체에도 지난해 1조원 가까운 돈을 냈다. 여기에 국회와 정치권은 말 많던 무역이득공유제의 아류인 농어촌상생기금 1조원까지 조성해 이익금을 토해내라고 하고, 법인세 인상 등으로 목을 조른다.

원죄는 기업에 손 벌리는 것

최순실 사건과 관련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출연금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창이다. 검찰은 돈을 낸 그룹의 총수까지 조사하려는 모양이다. 대통령이 작년 7월 개별 면담한 것과 관련지어 부정청탁 내지 대가성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기업이라도 문제의 두 재단에 기꺼이 돈을 냈을 리가 없을 것이란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통치권자와의 대화라면 한마디만 나와도 알아들어야 하는 것이다. 자발적이냐 아니면 강압에 의한 것이냐는 논란 자체가 무의미하다. 일각에선 해당 기업들이 다들 눈치를 봐야 했던 처지라며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식의 억측이 나온다. 그러나 고민 없는 기업은 없다. 이런 식으로 갖다 붙이면 이유가 수십개는 될 것이다.

기업은 사업을 열심히 해서 고용을 뮌?하고 세금을 많이 내면 된다. 원죄는 이런 기업에 돈을 내라고 손을 벌리는 데 있다. 쉽게 정경유착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우리 사회 전체가 기업을 봉으로 안다고 말해야 옳다. 내키지 않는데도 돈을 내야 했다면 피해자라고 볼 수밖에 없다.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지 처벌 대상이 아니다. 또 하나의 희생양을 만들려 해선 안 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면 돌아오는 것은 재앙뿐이다. 그 고통은 서민이 가장 크다. 기업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흔들어서야 되겠나.

문학수 경제교육연구소장 m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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