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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싱 텐]마크 웨버의 길몽이자 악몽, 레드불과 베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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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본 마크 웨버 - 下


[최진석 기자]"멀티 21!, 멀티21!(multi 21!, multi 21!)"
2013년 포뮬러원(F1) 말레이시아 그랑프리(GP)가 열린 세팡 서킷. 다급한 목소리가 레드불의 팀라디오에 울려퍼졌다. 레드불 레이싱팀 소속 세바스찬 베텔이 경기 종료를 앞두고 팀 동료인 마크 웨버를 추월해버린 것이다. 3, 4위를 여유 있게 따돌린 두 드라이버가 원투피니시를 눈앞에 둔 상황이라 팀원들은 물론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에 바빴다. 무리한 추월 과정에서 두 머신 간에 접촉이 생기면 원투피니시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선두로 달려 포디움 제일 윗자리를 예약했던 웨버는 베텔의 공격적인 추월 시도에 당황하고 화가 났다. “안정적으로 원투피니시를 하라”는 팀오더(멀티21)를 보란 듯이 무시하고 웨버를 제쳐버린 베텔은 웨버와 크리스티안 호너 감독의 항의에도 어깨를 들썩 거릴 뿐이었다. 경기 후 베텔은 “팀오더를 어긴 건 잘못이지만 우승한 것은 부끄럽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이건 지난 번 웨버에 대한 나의 복수”라고 말하기도 했다.

베텔의 추월 사건은 2013년 F1을 달군 화제 거리였다. 한 울타리에 수컷 호랑이 두 마리를 풀어놓은 듯, 승리에 대한 집착 강한 웨버와 베텔은 서로를 물어뜯었다. 실력이 물오른 웨버는 생애 첫 시즌 챔피언에 목말라 있었다. 차량의 성능이 정점에 달했던 레드불 레이싱팀의 머신은 절호의 기회였다. 최고의 머신에 자신의 실력을 접목시킨다면 챔피언은 더 이상 불가능한 꿈이 아니었다. 문제는 신예 베텔이었다. 당시 사상 최연소 나이로 F1에 데뷔한 베텔은 레드불에 입성한 뒤 단숨에 포디움을 따냈다. 그리고 이내 레드불 레이싱팀의 에이스 자리도 가로채갔다.


4년 연속 F1의 '언터처블(untouchable) 팀‘으로 군림한 레드불. 꿈 갖은 근무환경(?)에서 두 드라이버는 지독한 악연을 이어갔다. ‘악연의 연대기’의 시작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후지스피드웨이에서 열린 일본 GP. 이 때 마크 웨버는 신생팀 레드불 레이싱팀에서 대들보 역할을 맡고 있었다. 레드불 드라이버 프로그램을 이수한 베텔은 BMW 자우버에서 로버트 쿠비짜를 대신해 F1 시트에 앉았다. 최연소 데뷔였다. 이후 토로로소에서 시트를 받아 달리고 있었다.

당시 후지스피드웨이에는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웨버는 3위로 달리고 있었다. 이때 4위까지 치고 올라온 베텔이 뒤에서 웨버를 들이받았다. 웨버는 리어가 부서지며 리타이어해야 했다. 베텔도 프론트 서스펜션 파손으로 경기를 포기해야 했다. 문제는 이 때가 세이프티카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생애 세 번째 포디움 기회를 날려버린 웨버는 이 날을 잊지 못할 것이다.


악연의 골은 깊어갔다. 베텔은 2008년 토로로소에서 첫 우승을 했다. 웨버보다 빨리 우승컵을 들러올린 것이다. 2009년에는 레드불로 이사를 왔다. 웨버는 불편한 이웃과 한집살림을 하게 됐다.

팀에서 후배 드라이버로 입성한 베텔의 반란은 2009년부터 시작됐다. 베텔이 시즌 종합 2위 자리에 오른 것. 이는 베텔이 웨버를 누르고 팀 내 넘버원(No.1) 자리에 오른 것을 의미한다. 베텔의 상승세는 그치지 않았다. 2010년에 베텔은 첫 번째 월드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최연소 기록까지 갈아치웠다. 이후에 웨버가 팀에서 100%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레드불이 될성부른 떡잎인 베텔에게 보다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는 정황이 여러 곳에서 포착된 것이다.


웨버 역시 차별대우와 배신을 당하기만 한 피해자가 아니었다. 2012년 브라질 GP. 세 번째 월드챔피언 타이틀 획득을 앞둔 베텔은 브라질에서 사진의 챔피언을 확정지으려 했다. 하지만 웨버는 같은 팀 베텔을 지원사격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팀 드라이버들처럼 그를 공격했고 경쟁했다. 이때는 팀과 베텔이 웨버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듬해 말레이시아GP의 멀티21 사건으로 이어지게 된다.


웨버는 2013년을 끝으로 레드불 레이싱팀을 떠났다. F1도 떠났다. 몸값 비싸고 나이 많은 드라이버가 필요하고, 또 그를 감당할 만 한 팀은 존재하지 않았다. 웨버는 그렇게 포르쉐로 적을 옮겼고 그곳에서 꽤나 혁혁한 공을 세웠다. 조직력, 팀워크, 헌신을 강조하는 포르쉐 조직은 웨버의 입맛에 잘 맞았다. 포르쉐도 기복 없는 성실한 일꾼 드라이버인 웨버가 예뻐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베텔도 레드불의 영원한 프랜차이즈 스타가 아니었다. 이듬해 웨버의 빈자리를 채운 다니엘 리카르도. 그 역시 레드불의 드라이버 프로그램을 이수한 젊은 피였다. 그는 2014년 시즌에서 베텔을 도발하며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자신의 입지가 더 이상 예전같지 않은 것을 느꼈던 것일까. 베텔도 2014년 시즌을 끝으로 팀을 옮겼다. 웨버가 자신이 그토록 꿈꿨던 포르쉐의 품으로 갔듯, 베텔도 어릴 적 꿈이었던 페라리 레이싱팀으로 달려갔다.


웨버는 포르쉐에서 드라이버 인생의 마지막을 해피엔딩으로 장식했다. 이제 제법 F1에서 고참 선수가 되어버린 베텔의 커리어는 어디로, 어떻게 이어질까. 어디선가 웨버가 애증의 눈빛으로 베텔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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