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시재 주요 이사진
[ 안재광 기자 ] 지난달 21일 저녁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 여야의 50대 ‘잠룡’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남경필 경기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었다. 민간 싱크탱크 여시재가 출범하는 자리였다. 민간 연구소 출범식에 여야 유력 정치인이 참석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들은 “대한민국 미래를 초당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에 공감한다”고 참석 이유를 밝혔다. “정치적 입장차 탓에 작은 것조차 합의하기 힘들었는데, 여시재처럼 중립지대가 생겨 이곳에서 의견 접근을 봤으면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헌재 여시재 초대 이사장은 “정파를 뛰어넘어 여러 현안에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는 솔루션 탱크가 되겠다”고 말했다.
철저히 독립된 싱크탱크 표방
‘시대와 함께하는 집’이란 뜻의 여시재(與時齋)는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이 사재를 털어 설립한 새로운 모델의 ‘한국형 싱크탱크’다.
기존 기업연구소와는 완전히 다르다. 한샘에 도움되는 연구를 일절 하지 않는다. 한샘과 철저히 별개로 운영된다. 출연자인 조 회장조차 이사진에서 떠날 정도로 설립 때부터 ‘독립성’을 중시했다. 한국에는 사실상 없는 독립적 싱크탱크 역할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였다.
기업이나 산업 관련 연구보다 훨씬 큰 그림을 그린다. ‘대한민국이 미래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선 변화를 주도하는 창조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취지로 4대 연구 주제를 정했다. 주제는 △세계의 변화 △디지털 사회 △지속 가능한 발전 △동서양을 초월한 신문명 등이다. 이달 8~11일 처음 연 ‘동북아포럼’에선 유라시아의 협력 방안, 에너지 협력 방안 등을 주로 논의했다. 여시재의 영문 이름(미래 컨센서스 연구소: Future Consensus Institute)처럼 다가올 미래 사회상을 탐구하고 시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다국적 연구원 20여명 포진
국내 저명 인사들을 이사진에 포진시켜 싱크탱크의 신뢰성을 높이고 실질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경제 부총리를 지낸 이 이사장을 비롯해 정창영 삼성언론재단 이사장, 김도연 포스텍 총장, 안대희 전 대법관, 김현종 전 유엔대사,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박병엽 팬택 창업자, 이재술 딜로이트안진 회장 등이다. 또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상근부원장으로 재단 운영을 총괄하고 있고, 조정훈 전 세계은행 우즈베키스탄 지역대표도 恝坪攘汰?맡고 있다. 이원재 희망제작소 전 소장이 기획이사로 지난 7월 영입됐다. 원장 자리는 아직 공석이다.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무게감도 있는 인물을 뽑으려다 보니 찾는 게 어렵다”고 여시재 관계자는 설명했다.
실질적 연구는 20여명의 상근연구원이 하고 있다.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국제·외교·안보·역사 전공자들 위주다. 국내 대학은 물론 중국 러시아 등에서 학위를 취득한 사람이 많다. “특정 대학이나 국가에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있어 다국적군 같은 느낌”이라고 여시재 관계자는 말했다.
여시재는 상근연구원뿐 아니라 각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연구자와 교수 간 협업도 한다. 이원재 이사는 “각 분야에 연구 잘하는 사람들을 네트워크로 묶어 더 큰 연구 결과물을 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념·정파 뛰어넘어 솔루션에 집중
여시재는 ‘솔루션 탱크’를 표방한다. 단순히 연구만 하는 게 아니라 연구 결과물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정부 고위관료나 정치인, 언론인 등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연구 결과물을 내고, 이들을 대상으로 적극 ‘정책 마케팅’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이념적 성향이 보수, 진보 등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고 관계자들은 말했다. 국가적 아젠다를 설정하고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이념적으로 골고루 포진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이는 싱크탱크가 발전한 미국과도 다른 방향이다. 미국은 중도로 분류되는 브루킹스연구소를 비롯해 보수 진영의 헤리티지재단, 진보의 미국진보센터(CAP) 등이 대부분 분명한 이념적 색채를 띤다. 설립 때부터 정치인이 많이 참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재정의 상당부분을 기부금에 의존하는 것도 한 이유다. 확실한 자기 ‘색깔’을 내지 않으면 기부자가 그만큼 줄 염려가 있다.
이에 비해 여시재는 조 회장의 사재 출연을 기반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이념적 성향을 지닐 필요가 없다. 조 회장의 한샘 보유지분 중 절반에 해당하는 4000억원 상당의 주식을 현금화해 언제든 재원으로 쓸 예정이라고 한샘 측은 밝혔다. “재단 자금을 크게 신경 쓰지 말고 성과를 내는 것에 주력해달라”는 게 조 회장의 당부였다고 한다.
이 이사장은 “작은 것이라도 조금씩 합의를 이끌어내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면 더 큰 합의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실용적인 연구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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