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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의 문화살롱] 결혼식장에서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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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웃지 못할 일이다. 결혼식장에서 신랑에게 싸움을 부추기다니.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며 “파이팅(fighting·싸움)!”을 외치는 친구들에게 신랑은 또 “고맙다”고 화답한다. 신혼여행을 떠나는 길에도 다시 한 번 ‘잘 싸우라’는 독려가 이어진다.

어쩌다 우리 언어가 이렇게 비뚤어졌을까. ‘파이팅’은 적대적 관계에 쓰는 부정 언어다. 좋은 일에 쓰는 긍정 언어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운동 경기 전 잘 싸우라는 의미로 자주 쓰지만 정작 영어권에서는 반감 때문에 꺼린다. 꼭 쓰고 싶다면 차라리 “빅토리(victory·이기자)!”가 낫지 않은가. 우리말로 “아자아자!” “앗싸!” “힘내자!” 등도 있다.

툭하면 '투쟁·폭탄·학살·저격' …

전투적인 언어는 정치권에 넘친다. 툭하면 학살이고 전쟁이다. ‘공천 학살’ ‘계파 학살’ ‘저격수’ ‘암살자’가 난무한다. 국회 질문 중에도 섬뜩한 말이 중계된다. 그러니 모두가 험악해진다. 저마다 ‘육아전쟁’ ‘입시전쟁’ ‘취업전쟁’ 등 자극적인 표현을 경쟁적으로 내뱉는다. ‘세금폭탄’ ‘매물폭탄’ ‘문자폭탄’도 마찬가지다. 비가 많이 내리면 ‘물폭탄’이고 눈이 많이 내리면 ‘눈폭탄’이니 이마저 전쟁용어다.

온라인에서는 더 심각하다. 국적 없는 말까지 난무한다. ‘게시판 이용자’를 줄여 ‘게이’라고 하면 소통 자체가 어려워진다. 그나마 한자의 ‘찰 만(滿)’과 탱크의 일본발음을 합친 ‘만땅’은 우리말 ‘가득’으로 바꿀 수라도 있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 대형 쇼핑센터를 뜻하는 ‘아웃렛(outlet)’은 표기법에도 없는 ‘아울렛’으로 굳어져 버렸다. 2001년 처음 등장한 ‘마리오아울렛’을 비롯해 유명 브랜드들이 너나없이 그렇게 쓰는 바람에 언론마저 따라 쓸 정도가 돼 버렸다.

외래어를 무조건 쓰지 말자는 게 아니다. 어떤 이는 왜색 용어를 금하자며 담을 쌓기도 하지만, 우리말에 없는 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어휘창고를 넓혀야 한다. ‘문화’ ‘국가’ ‘국민’ 같은 말은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다. ‘현관(玄關)’도 그렇다. 일본은 태풍 피해를 줄이기 위해 문을 북쪽으로 내서 어두운 편이다. 검을 현(玄)은 북쪽방위를 나타낸다. 한자나 우리말에는 없으니 가져다 활용하는 게 맞다. 가장 완벽에 가깝다는 프랑스어 문법체계도 이렇게 해서 완성됐다. 370년 동안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연구가 있기에 가능했다.

전투적인 말이 서로를 죽인다

우리말에는 개념어가 부족하다. 표준국어대사전의 표제어 51만여개 중 고유어가 25.5%밖에 안 된다. 그러다 보니 개념어를 빌려다 쓰는 게 많다. 개념어는 사고의 결과이고 문명의 결실이다. 프랑스나 독일이 개념어를 확립한 역사는 길다.

인간은 언어로 사고하고 언어로 표현한다. 사용하는 언어가 거칠면 성정도 거칠어진다. 그래서 말은 그 사람의 품격을 나타내는 척도다. 200년 전 미국 사상가 랠프 왈도 에머슨은 “남 앞에 자화상을 그려 놓은 것이 곧 말”이라며 언어의 품격을 셋으로 나눴다. 인생과 철학을 논하면 상, 일상 얘기를 하면 중, 남을 욕하면 하로 봤다. 전투적인 말과 개념없는 말은 최하에도 못 미친다.

말을 잘못 쓰면 칼이 된다. 서로를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만든다. 생선 포장지에선 비린내 나고 향 싼 종이에선 향이 난다고 하지 않던가. 남에게 장미꽃을 건넨 손에선 은은한 향기가 난다는 말도 있다. 모레가 한글날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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