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더라'의 정체성 찾기. 팩트북은 항간에 떠도는, 궁금한 채로 남겨진, 확실치 않은, 애매한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카더라'를 취재해 사실 여부를 가리는게 목표입니다. 전자·가전 관련 소비재에 대한 내용이 주로 다뤄지지만, 때에 따라 전혀 다른 분야에도 접근합니다. <편집자 주>
[ 이진욱 기자] "겨울에 사는 게 당연히 싸죠"
온라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겨울에 에어컨 사면 쌀까요?'에 대한 한결같은 대답이다. 계절 가전은 제철이 아니면 찾는 사람이 없어 싸게 팔 것이란 생각에서 비롯된 검증되지 않은 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기자도 에어컨은 겨울에 더 싼줄 알았다. 박스 개봉 후 뽁뽁이(에어캡)를 터트리는 쾌감을 몇 달 뒤로 미루는 인내. 할부로 득템했는데 사용도 못한 채 매월 빠져나가는 결제대금만 지켜보는 고통. 기다림의 보상을 싼 가격으로나마 위로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현장이 알려줬다. "아니라고"
가전유통점 에어컨 담당 판매직원들은 하나같이 "에어컨은 여름에 榮째?싸다"고 했다. 제품마다 가격차만 있을뿐 확실한 건 여름에 더 싸다는 것. 얼마다 더 싼지 알아보기 위해 기준이 필요했다.
매장 직원들의 도움으로 잘 팔리면서 겨울에도 판매된 제품을 찾았다. 방문 매장은 서울 거점의 롯데하이마트 2곳, 삼성디지털프라자 3곳, LG베스트샵 2곳 등 7곳이다.
서초구에 위치한 한 판매점에서는 16평형 에어컨을 선정했다. 올해 1월 출시돼 현재까지 꾸준히 판매중인 제품으로, 매장에서 두번째로 잘팔리는 모델이란다. 일단 출고가는 312만원. OO라이프, IPTV 결합상품 적용 등을 하면 할인이 엄청나 보이지만, 추가 지출이 발생하는 요건들이라 실구매가격 산정에서 제외했다. 추가 지출이 없는 카드혜택까진 적용했다.
담당직원은 이것저것 서류를 뒤적인 끝에 '248만원'이라고 알려줬다. 여기에 정부가 7월부터 9월까지 시행중인 에너지효율 1등급제품 환급정책까지 적용하면 20만원을 추가로 할인받을 수 있다. 그럼 228만원. 동일 제품을 겨울엔 얼마에 판매했는지 물었더니 "올 1, 2월에 할인 적용해서도 290만원 정도에 팔던 제품"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가격차가 컸다. 일시적 이벤트일수도 있는 정부 환급 20만원을 빼더라도 50만원 정도 더 비쌌다. 여름말고 겨울에 사는게 말이다. 이 매장만 그러냐고 물었더니 제조사 판매점은 할인폭이 다 같단다.
이유를 물었다. 직원은 겨울에 사는 사람이 적으니 할인폭이 적을 수 밖에 없다는 명쾌한 대답을 내놨다. 반대로 여름엔 수요가 많아 기본적으로 할인폭이 크다고 한다. 일정 모델에 수요가 몰리는 것을 막기위해 모델별로 할인폭을 변동시킨다고도 했다. 본사에서 짧게는 4~5일, 길게는 일주일에 한번씩 할인폭 지침이 내려온다. 직원 손에 들려있는 할인폭 표를 보니 빽빽하게 모델별로 기본할인, 추가 할인가격까지 나와있었다. 공개를 요구하니 대외비라며 손사래를 친다.
가전양판점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동작구와 관악구의 양판점 3곳을 방문해 동일한 제품으로 문의하니 여름에 살 경우 40~50만원이 더 싸다고 했다. 양판점의 경우 기본 할인폭 가드라인이 있지만, 여름에는 매장별 자체 할인이 추가된다고 한다.
또 양판점은 삼성전자, LG전자 등 각 제조사로부터 받은 마케팅 비용을 에어컨 할인비용으로 상쇄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판매를 늘리기 위한 비용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양판점 역시 전국적으로 할인폭은 유사한 수준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전국적으로 봐도 에어컨은 겨울보다 여름에 사는게 싸다. 하나 더 보태면 7월이 가장 싸다. 7월이 지나면서 재고가 줄기 시작해 물량보다 고객이 많은 현상이 생긴다. 찾는 사람이 물량보다 넘치니 제조사 판매점, 양판점들은 할인폭을 일제히 줄인다. 벌써 4년째 이런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하니, 기억해두면 에어컨 설치비용 정돈 챙길 수 있다. 다만 수요가 밀리는 한 여름엔 설치가 좀 늦어질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에어컨은 남보다 비싸게 사서 묵혀두는 게 아니라, 미치도록 더운 '한 여름'에 사서 바로 켜는게 답이다.
이진욱 한경닷컴 기자 showg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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