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100弗때 판매한 상품 '손실 구간' 들어가 원금 날려
"증권사서 위험 고지 안했다"
vs
"변동성 강한 파생상품인데 고액 투자까지 보호해야 하나"
[ 정소람 기자 ] 원유DLS(파생결합증권) 투자자가 판매 증권사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나서면서 비슷한 소송이 잇따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고유가 시기이던 2013~2014년 발행한 원유DLS 대부분이 올해부터 차례로 만기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쟁점은 조금 다르지만 투자자의 잇단 집단소송이 이어진 주가연계증권(ELS)처럼 증권사들에 또 다른 ‘뇌관’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불완전 판매’ 논란 점화되나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K씨는 2013년 미래에셋대우 지점 직원의 추천을 받아 특정 주식 종목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입자 “안정적인 투자를 하고 싶다”며 담당 직원 교체를 요구했다. 새로 온 직원은 “원유값은 폭락할 위험이 없는 안전 자산”이라며 안정적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으로 원유DLS를 추천했다고 한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안팎을 오르내리던 시점이었다.
증권사 측은 “원유값이 절반 이하로 폭락해 미리 정해 놓은 원금손실 구간(knock-in·녹인 구간)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매달 약정한 수익률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라며 투자를 권유했다는 것이 K씨 측 얘기다. 그는 2013년 2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주로 원유를 기초로 하는 이 회사 DLS 상품 9건(4억6000만원 상당)에 잇따라 가입했다.
그러나 DLS 상품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해 불완전 판매에 해당한다는 게 고소인 측 주장이다. DLS는 기초 자산이 녹인 구간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약정 수익률을 받을 수 있지만, 한 번이라도 들어가면 만기가 돼도 원금을 되찾을 수 없는 구조다. K씨가 처음 가입한 상품은 기초자산(브렌트유, 금, 은) 중 어느 하나라도 최초 기준 가격의 50% 미만으로 하락하면 손실을 보도록 설계돼 있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브렌트유가 녹인 구간에 들어갈 정도로 급락하자 K씨는 원금 대비 70%의 손실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녹인이 발생한 2014년 12월까지 원금 손실의 위험성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청약확인서 등도 교부받지 못했다”고 고소인 측은 주장했다.
어느 선까지 손실 보상해야 하나
이번 소송을 시작으로 고유가 시기 원유DLS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증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잇따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3년 증권사들이 경쟁적으로 원유DLS를 판매한 뒤 올해부터 만기가 차례로 돌아오면서 투자자 손실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만기를 맞은 원유 DLS 규모는 6643억원으로, 이 중 3515억원이 손실액으로 확정됐다. 투자자들의 평균 손실률은 54.5%에 달했다. 증권사별로는 미래에셋증권(1055억원)과 미래에셋대우(865억원)가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원고 측을 대리하는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는 “DLS는 기초 자산의 변동에 따라 원금 전액을 손실 볼 수도 있는 상품인데 당시 판매한 증권사들이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투자자의 확정 손실액이 늘어나면서 증권사를 상대로 한 소송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투자 손실을 본 뒤 ‘불완전 판매’ 논란을 제기하면서 투자 책임을 금융사에 돌리는 행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구조적으로 강한 변동성을 갖고 있는 파생상품에 거액을 투자하는 사람까지 보호해주기는 어렵지 않냐는 것이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DLS 등 복잡한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상당수는 ELS나 다른 전문적 상품에 투자해본 경험이 많다”며 “증권사에서 추천하더라도 가입 조건이나 손실 가능성을 스스로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 DLS(파생결합증권)
derivative linked securities. 통화 실물자산 신용위험 등을 기초자산으로 해 자산의 가치 변동에 따라 일정 수익을 얻을 수 있게 설계한 상품. 자산 가격에 큰 변동이 없으면 약속한 수익률을 보장받지만, 미리 정해둔 원금 손실 구간(knock-in)에 들어가면 원금 전액을 손실 입을 수도 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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